재가복지봉사센터 임병일 사회복지사

 마땅한 기술도 없고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엄마는 그때부터 자활근로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오빠와 지민이, 엄마, 이렇게 세 식구가 생활하기에 충분한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고 가족을 위해 단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이 열심히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빠의 빈자리가 컸지만 큰 문제없이 살아가던 세 식구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평소 내성적이지만 지민이에게 한없이 자상했던 오빠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오빠의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갔고, 아무에게도 내색할 수 없었던 오빠는 점차 성격도 변해갔고 마음의 문도 닫아버렸습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오빠는 그렇게 매일 매일 상처받으며 그렇게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친구들의 구타로 뇌를 다쳐 뇌수술을 하게 되었고 수술은 그나마 잘되었지만 심각해진 대인기피증세로 인해 더 이상 학교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고등학교를 중퇴한 채 오빠는 폐인이 되어버렸고 지민이의 집안은 한숨만 늘어갔습니다.


 삶이 힘들다고 느껴져서 일까요. 그 무렵 엄마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의사의 말.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받아본 검사결과는 자궁암이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암이라는 병이 엄마에게 생겼다니. 정작 그 결과에 가장 놀란 것은 엄마였을 테지만 엄마는 지민이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히 얘기했습니다. 󰡒열심히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을 거야. 우리 힘내자󰡓라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면서 처음에 지민이는 정말 도망쳐 버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들이 왜 우리 가족에게만 생기는 걸까 󰡑하늘을 원망하기도 잠시. 지민이는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꼭 엄마에게 힘이 되어 드리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드리겠다고... 그때부터 지민이는 패밀리 레스토랑 서빙 일을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일이 고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암과 싸우며 자활 일까지 열심히 하시는 엄마를 보며 적어도 내가 엄마에게 짐이 되어 드리진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지민이 가족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건 자활 일을 하던 동사무소 직원들이었습니다. 치료비로 인해 보증금이 깎여 당장 오갈 데 없어지자 직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급한 대로 방한칸짜리 월세 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주변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엄마의 건강은 쉽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위해 올해 6월부터 자활 일을 그만 두고 7월에는 자궁암 수술을 받았지만 병세는 그리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민이는 마음이 급합니다. 빨리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살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려면 먼저 두 명 눕기도 비좁은 지금의 방에서 얼른 벗어나서 방 두개짜리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지만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빠는 아는 분의 주선으로 어느 기도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빨리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오빠도 데려 올 수 있을 텐데요. 밉던 곱던 내가 사랑하고 언제든 감싸주고 내가 기댈 수 있는 “가족...”이니까요.


 제발 지금보다 상황이 나빠지지 않기를 항상 기도하며 밝게 살아가는 지민이는 올해 열아홉살 고3소녀입니다.


■ 필요후원내용 : 생활비를 포함한 생활안정자금, 가족의 안정된 거주비용 등

- 입금계좌: 농협 560-17-002021 (예금주: 하남시종합사회복지관)

            입금시 본인의 성함 뒤에 후원하고자 하는 분의 이름을 기재해주세요.

            (예 : 송금자가 “홍길동”이고 후원대상자가 “지민”일 경우 “홍길동지민”)

- 문의사항: 031) 790-2944~5 임병일 사회복지사 ,임지은 간호사


하남신문(www.ehanam.net)

저작권자 © 하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