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모 시인(캐나다문인협회 회원)

 오랜만에 찾은 피서지는 호수, 오리, 갈매기 모두 그 자리 에 있다. 울창한 송림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장렬 하는 태양이라고 표현하는 건 진부하다. 오히려 계곡사이로 흐르는 물과 어우러져 을씨년스럽기 까지 했다. 변한 것이 있다면 팍삭하게 늙어버린 고목나무와 새롭게 태어난 젊은 나무들이 시샘하여 버티고 있는 모습이 우리들 인간세상을 보는 것 같다.

 텐트를 대충 정리하고 호수로 갔다. 모래밭 풍경은 눈부시게 황홀하다. 인어공주들의 빼곡히 모래밭에 누어 일광욕을 즐긴다. 심하게 표현을 하면 물개들의 향연이 연상된다. 그사이를 요리조리 비켜 가기란 곡예사가 줄타기 같이 아슬아슬하다.

시선의 초점을 어디에다 맞추어야 할지 아이들보기가 민망하다. 마치 큰 죄를 짓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 같은 기분이라 할까? 소심한 나의 탓으로 돌리기엔 현장이 너무 노골적이다. “젠장 본국에 어느 분 같으면 행복한 고민일 탠데…….”

언 듯 언 듯 비치는 호수의 물은 살여울 같다. 아이들은 좋아라, 물속을 뛰어 들며 탄성을 지른다. 그 소리는 호수가 언저리를 맴돌아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유감스럽게 난 그 속살을 마음껏 애무하지 못하고 살며시 발들 들여 놓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모래가 발바닥을 간질이고, 무언가 발등을 친다. 가제들 이었다. 어릴 적 가제 잡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가제 바람에 나의 신념은 무너지고 말았다. 어린이와 같이 동심으로 돌아가 자맥질을 하였다. 정신없이 가제를 잡다보니 일거양득 소라도 있다. 아이들 탄성으로 해변이 떠나간다. 각국 어린이들까지 동화되어 신들이 났다. 주인공이 된 우리 아들은 어깨가 마냥 으쓱된다.

해가 솔깃해서 텐트로 돌아왔다. 모닥불을 피어놓고 하늘을 바라본다. 원시림 속에 밤하늘은 금강석을 깔아 놓은 듯 황홀 하다. 눈물이 나도록 시리다. 어린 시절 누나와 모깃불을 피우며 밤하늘에 별을 세며 부르던 동요들이 가슴속으로 잔잔하게 스며든다.

별 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 별 셋, 나 셋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깊어가는 가을밤에 낮 서른 타향은,…

붉게 물든 노을이 서녘하늘로 살짝 모습을 감출 때면 적막한 소쩍새 울음은 산천을 그윽하게 만든다. 반딧불들도 구색을 맞추며 머리 위를 날며 구혼의 빛을 한껏 뿜어댄다. 북두칠성이 북쪽 끝자락에 매달려 가물거리면 절정을 이루던 별들의 향연도 차츰 힘을 잃는다. 추임새로 장단을 맞추던 모깃불도 매콤한 연기를 뿜으며 서서히 사그라진다.

유성이 꼬리를 길게 흘리고 저쪽 사라지고 있다. 저별은 어디로 갔지? “죽는 거야?”죽는 게 뭔데?

“이 바보야? 죽는 것도 몰라?

“죽는 게 죽는 거지?

누나도 죽음에 대해서는 설명을 못하고 윽박지르는 것으로 순간을 넘긴다.

이렇게 별똥별의 생을 마감하는 슬픈 사연도 동심의 심장을 둥당거리게 했던 아픈 추억들이다. 누이와 난 북두칠성이 국자같이 생겼다하여 국자가 빨리 기우러져야 새벽이 온다고 졸음을 떠 밭치며 경쟁하듯 날밤을 새우던 알싸한 추억들이다. 

새벽이 되면 산림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따금 불어오는 미풍은 장대같이 쭉 뻗어 올라간 나무들을 속절없이 건드려 댄다. 그 사이로 요사스런 구름은 바람을 부추겨, 숲속은 광란의 도가니가 된다. 오갈이 들은 자장나무도 술이 취한 듯 벌겋게 상기되어 주위의 나무들을 툭툭 치며 시비를 건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강풍도 나무들과 어울리며 숲속을 일대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그러다가 힘이 부치면 조용해지다 또다시 심통이 나면 하루 종일 분탕질을 한다.

문득 전에 왔을 때 늙은 고목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신이 거의 죽고 이파리 몇 가닥이 팔랑거렸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여 찾았다.“아뿔싸, 고사했구나?

슬픈 상념이 꼬리를 문다. 고목에 살짝 기대어본다. 차다. 그때는 온기라도 있었는데 차라리 안 찾은 것만 못했다. 머지않아 피서객들 불쏘시개로 산화되겠지 난 자장나무 고목에 기대어 깊은 고뇌의 빠진 철학자처럼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것은 머지않은 날 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 시인 약력 : 1943년 하남시 출생, 1993년 캐나다 이민, ‘지구문학’으로 등단, 지구문학작가회의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캐나다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캐나다지부 회장, 캐나다한글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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