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정민채 본지 상임이사

 인생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근시이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전 아름답고 자태가 고운 국화는 되려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꽃들은 움도 틔우지 못한 초봄에 향기를 뽐내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하지만 일찍 꽃을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매화가 세상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가? 그렇지 않다. 매화 꽃잎이 다 지고 난 5월에 만개하는 장미는 어느 꽃보다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하지만 장미가 마음이 급해 3월에 피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춘삼월 찬이슬에 장미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동백은 동백대로, 자기가 피어야하는 계절이 따로 있다. 꽃들도 저렇게 만개의 시기를 잘 알고 있는데,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초봄에 피어나지 못해 안달인가?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걱정하지 말라. 인생은 의외로 매우 길다. 이제 그대의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청춘남녀들이 청소년기의 성취나 성공을 부러워하고, 잠정적인 실패에 좌절하며, 몇 년간의 뒤처짐에 열등감을 느낀다. 그대의 전성기는 아직 멀리 있을 수 있다. 육십, 칠십이 넘어서야 올 수도 있다. 그대가 노려야 할 것은 소년등과가 아니라 장년과 노년에 어떻게 삶을 살아가느냐이다.

여기 IBK기업은행 신당동 지점 이철희 지점장(54)의 성공신화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전남 영암군 출신으로 고교만 졸업한 채 상경해 공장과 건설현장 등을 전전하던 그가 기업은행에 입사한 시점은 30년 전인 1983년 9월이었다. 비정규직 운전사로 들어가 7년 간 비서실장 등 임원차를 몰았다.

입사한 지 3년이 되자 정규직 직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은행에서 정규직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보일러공이 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보일러 관련 공부를 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는 1990년부터 기업은행 성동지점에서 별정직 보일러공으로 일했다. 그러나 ‘화이트칼라’인 은행원이 되고 싶어 시간이 날 때마다 보일러와 관계없는 일을 찾아하면서 서무보조 일을 많이 도와줬다. 그 사이 인덕전문대를 졸업하고 서울산업대로 편입을 하면서 학력도 쌓아나갔다.

입사 15년 만인 1998년 드디어 정규 기능직이 됐다. 그래도 금융 관련 업무를 하고 싶다는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주말을 이용해 한국공인 재무설계사, 증권투자상담사 등 자격증 9개를 땄다. 과장 승진에 필요한 ‘책임자 시험’도 2000년 통과했다. 그는 “금융 업무를 하고 싶은 생각에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 지점에서 일을 하나씩 맡겨줬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은행창구에 앉던 날 ‘아침의 설렘’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 설렘을 마음에 품은 채 발로 뛰었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갑게, 진심으로 대하다보니 이곳저곳에 소개해 주는 고객이 늘어났다.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소문도 났다. 남들이 늦어도 40대 중반이면 되는 차장을 52세까지 달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스스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나간 나날에 대한 후회로 현재를 채우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확고하게 하고, 그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어제와 오늘에 안주하지 않았다.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내다봤다.󰡐내일(tomorrow)󰡑이 이끄는 삶과󰡐나의 길󰡑이라고 여겨지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행복해 보인다. 이렇게 참고, 기다리며, 노력하니 늦가을에 대국(大菊;국화)이 피지 않는가. 인생은 이래서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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