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현 칼럼 / 본지고문

 국외여행을 갔을때 일이다. 단체로 필리핀의 음식점에서 식사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잠시 후 먹음직한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온 식당 종업원이 테이블 가장자리에 앉은 한국 손님에게 접시를 불쑥 내밀며 난데없이 큰 소리로 한국말을 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전달! 전달!”이었다. 놀라며 사연을 알아봤더니 이 식당을 찾은 한국 단체 관광객 거의 모두가 느긋하게 종업원이 시중들어주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접시를 옮기며 “전달! 전달!” 하는 것을 보고 종업원이 그대로 따라했다는 것이다.


종업원으로서는 일일이 서빙을 하지 않아 편하고, 식당에서도 손님들이 빨리빨리 식사를 하고 나가는 게 득이 돼 한국에서 단체 손님이 오면 종업원들이 접시를 주며 전달을 외친다는 얘기였다.


◆ 익숙해 진 빨리빨리 문화


다른 선진국들이 수백 년에 걸쳐 달성한 산업화를 반세기 만에 이뤄낸 대한민국. 빨리빨리로 압축적 성공신화를 일궈 낸 우리 옆에는 앞만 보고 가는 직선(直線)문화가 살아있다.


두 점(點) 사이를 잇는 가장 가까운 거리가 직선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버리기 위해, 잘살아보기 위해 우리는 빨리빨리를 모토로 정신없이 달렸다.


목표로 한 지점에 가장 빨리 도달하기 위한 삶, 옆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삶, 바로 ‘직선의 삶’이었다.


남을 제치고 빠른 속도로 달려가 더 많이 갖고 싶은 직선의 삶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많은 이들로부터 질시 섞인 부러움을 받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허무하다”는 하소연을 한다.


사회적 지위에다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인생을 되돌아보면 많은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 곡선은 풍요롭다


2천500여 년 전 노자(老子)는 곡선(曲線)을 추구하는 삶이 더 풍요롭고, 완전한 삶에 가깝다고 설파했었다.


'곡선의 삶'은 우선 느림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두 점 사이를 곧바로 달려가는 직선에 비해 곡선은 가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하지만 늦게 가는 만큼 얻는 것들이 많다.천천히 걸으면 느낄 수 있는 길, 작은 돌 하나, 길섶에 있는 풀 한 포기까지 볼 수 있지만 차를 타고 질주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또한 곡선의 삶은 다양하다는 게 매력이다.두 점을 잇는 방법 중 직선은 하나밖에 없지만 곡선은 무궁무진하게 많다.직선의 삶이 규격화된 하나의 삶에 값어치를 두고 서로 갖고자 투쟁하는 것이라면, 곡선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는 공존(共存)의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곡선의 삶은 아름답다.직선의 삶이 차가운 대리석과 같다면 곡선의 삶은 금강송처럼 향기가 있고 온기가 있는 법이다.


◆ 검단산 자태처럼 부드럽게

장이나 김치처럼 오랜 숙성을 거쳐야 하는 음식도 느림의 미학이 만든 작품이다.구불구불한 하남둘레길도 S라인으로 펼쳐진다.


모두가 곡선이 지닌 가치와 매력이다.곡선의 가치를 온전하게 보여주는 검단산의 자태도 우리를 풍요롭게 하기는 마찬가지다.무미건조한 직선 대신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곡선에 빠져보자. 곡선의 삶을 살려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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