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하남시협의회 자문위원-정 민채

 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센터(제7회)

러시아를 방문한지 3일째 8월 23일 러시아 우스리스크 아무르스카야 63번지 ‘고려인 문화센터’를 방문했다. 1층 고려인 역사관,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독립운동가의 얼굴들이 별처럼 총총하다. 강우규‧ 안중근‧ 이상설‧ 최재형 등 5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노니 고단한 땅 연해주에서 치열했던 항일 독립운동사가 밤하늘처럼 펼쳐진다. 별도 없고 달도 뜨지 않던 암흑의 시절에 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별이 되었다.

민주평통 하남시협의회(이하 하남시협의회) 자문위원들은 고려인 문화센터 기념관 2층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회장 리아지움씨를 포함한 이사진 11명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건물은 이외로 컸다. 기후와 음식이 달라서인지 신체 외형이 변하고 뚱뚱해 보였다. 이들의 평균나이는 60대다. 교민들은 2세대나 3세대이기 때문에 우리말을 많이 잊어버렸다. 교민회장 리아지움씨는 30년 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고향격인 연해주로 다시 돌아오신 분이다. 그는 아예 러시아어로 인사말을 했다. 통역은 같은 교민여성이 해주셨다. 좀 이상해 보였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투박하지만 거침이 없었다. “연해주에 1만 명의 한인이 살고 우수리스크에는 5,200명이 삽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유태인 다음으로 높습니다. 1991년 이후 잘 사는 교민들이 다시 연해주로 회귀했고, 이들은 초창기 이주자들과 달리 농업이외에 다른 직업을 갖은 사람도 많습니다.

고려인 문화센터에 교민 350명이 등록했고 이곳 상주 인원은 15명이며, 한국의 역사와 영어회화를 가르칩니다. 이곳은 노인 복지관 2곳을 운영하며 노인들의 자녀들이 운영부담을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북한 총영사를 비롯한 북한 사람들이 방문했지만 마음 편히 이야기를 못 나누었습니다. 며느리나 사위를 볼 때 한인들을 선호합니다. 이제 한국과 1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서로 연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개 이런 내용이었다.

뒤이어 하남시협의회 류인호 회장의 답변사가 이어졌다. “이렇게 늦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아픔과 고통의 역사에 조그마한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교민 여러분이 이렇게 안정과 긍지를 갖고 살아가시니 마음이 뿌듯하며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 저희 회원들이 약소한 선물과 금일봉을 전하고자 하니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동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숙연해졌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자리배치는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사이사이에 한인들이 앉도록 만들어 졌다. 그들은 이국땅을 떠돌며 생존하기에 바빠 한국말을 많이 잊은 듯 했다. 다과를 들며 서로의 고향이야기, 강제 이주당한 쓰라린 아픔, 요즈음의 근황 등을 물어보았다. 사실 서로 잘 알아듣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이것도 어쩔 수 없이 서로 받아들여야만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분들과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짧은 만남을 아쉬워했다.

그 다음은 연해주에서 활동한 조선인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 흔적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이분들처럼 이름이 알려진 독립 운동가는 전체 활동가의 20%가 채 안된다고 한다. 조선독립을 위해 일하고 싸웠지만 잊히고 버려진 대다수 항일 운동가의 복원과 조명작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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