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민주평통하남시협의회 자문위원- 정 민채

 이승만의 집권 중 공적

외교 분야: 극히 어렵게 통일의 기회(북진통일)가 왔지만, 약소국 대통령 이승만은 도저히 휴전을 막을 수가 없었다. 6․25때 그의 공적은 반공포로 석방이다. 그것은 ‘미국이 공산군과 전쟁을 끝내기 위해 휴전협상을 벌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미국을 향한 벼랑 끝 외교다. 그 승부수로 ‘한미상호 방위조약’이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한국은 국방 부담을 덜고 경제 건설에 매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K출판 교과서는 그 공적을 외면한 채 “이승만 정부가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하여 휴전회담 자체가 결렬될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라고 설명한다. 반공포로 석방의 중대한 의미가 생략됐다. 그 때문에 이승만의 결단은 판을 깨는 무모함으로 비쳐진다.

경제 분야: 북한의 토지개혁은 소련군 주도로 지주의 토지를 몰수해서 농민에게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한 것이다(R출판, 고등학교 한국사; M출판 한국사 자습서). 이것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제도처럼 간주되어 학생들을 교묘히 혼동시키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일시에 소작농이 없어져서 환호했으나 땅 임자는 어디까지나 국가였다. 땅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국유화했다. 이승만은 이것을 두고 “정부가 대지주가 되고 농민들은 다 소작인으로 경작하게 되어, 전에는 ‘부호의 노예’이던 것이 지금은 ‘정부의 노예’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남한의 토지개혁은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하는 것으로, 농지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농지개혁이라고 불러야 한다. 북한과 다른 점은 정부가 지주로부터 땅을 사들여서 소작농에게 파는 ‘유상몰수, 유상분배’ 형식을 취했다. 땅값은 현금이 아니라 지가증권으로 지주에게 줬고, 땅을 받은 소작농은 땅값을 5년에 나눠서 현물로 상환토록 했다.

국방 분야: 20세기 초 대한제국의 1907년 보유병력은 중앙군 4천 215명, 지방군 4천 305명, 헌병대 265명 등을 합쳐 고작 8천 785명에 불과 했다. 그러나 한국군은 6․25전쟁을 겪으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1958년 11월 육군 56만 5천명, 해군 1만6천명(60척의 전투함정), 공군 2만 2천 400명(6개의 전투폭격기 대대를 포함한 10개 전투 비행대대), 해병대 1만 6천명 등 총 62만 9천 400명의 병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국군 전력(戰力)의 성장은 남한의 경제발전에 공헌하고,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문존무비(文尊武卑)의 전통을 타파하는데 이바지했다.

교육 분야: 1950년 전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50달러 정도였다.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국민이 부지기수였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이들의 교육에 투자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에 가까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당시 전체 예산 기준으로는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교육법을 입안해 전격적으로 ‘초등교육의 의무화’를 선포했다. 이 사업을 위해 어려운 재정을 쥐어 짜가면서 문교부 예산의 70%를 할애하여 의무교육을 관철시켜 나갔다. 나아가 중․고등학교를 대폭 증설하고 대학을 확충하며, 해외 유학을 장려함으로써 ‘교육기적’을 이뤄내 산업화와 민주화에 필요한 고급인재를 양산(量産)했다.

이승만은 원자력의 힘을 강하게 믿고 있었다. 1956년 외환의 경우 단돈 10달러를 쓸 때도 대통령의 결재를 받던 시절, 원자력 공부를 위해 1인당 6000달러를 지원했다. 당시로는 파격적이다. 150명이나 미국 유학을 시켜 그들이 돌아와 오늘날 한국 원자력 산업의 토대를 만들었다. 실로 교육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의 과오는 장기 집권, 독재 그리고 말년의 부정선거다. 대부분의 교과서와 학습서들은 과오만 기술했지 공적은 거의 기술하지 않았다. 아예 공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들은 빙산의 ‘일각(一角)’만 보았지 ‘물속의 빙산’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당시의 피치 못할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들 수 없다. 이승만은 과오도 있지만 공적도 대단해서 위에 열거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작년 ‘새 정치연합’ 의원들과 일부 교수․교사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해 거리로 나와 반대성명과 서명운동을 벌였다(구글, 네이버). 그들은 교과서와 자습서를 읽고 그 내용이 사실에 입각한 제대로 된 역사책이라고 느꼈는지 묻고 싶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제1공화국과 이승만’에 관한 참고 서적을 많이 읽어야 한다. 지금의 역사책을 공부한 학생들은 어떻게 느낄까? 아마도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볼 것 같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겠지만 필자의 눈에는 교과서에 문제가 많아 보였다. 이제 우리는 좌우 이념에 편승하지 않는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수치스러운 역사가 아닌 국난을 극복한 역사가 될 것이며,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을 바로 세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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