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문학진 새정치민주연합 하남지역위원장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습니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란 뜻인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에서 ‘혼용’을 가져오고,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무도’를 가져왔습니다.

이 나라의 돌아가는 형세가 오죽하면 지성인들이 이런 말로 올 한해를 압축해 내놓았겠습니까.

2015년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각종 송년회, 망년회 쫓아다니느라 바쁘실터이나 잠시 숨을 고르고 올 한해를 반추해보기로 할까요.

올 봄엔 이제껏 유례없던 메르스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이게 어디서 우리를 덮칠지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괴물이었기에 우리 모두는 고개를 잔뜩 움츠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년전 4월 16일의 세월호 트라우마에서 채 벗어나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밀려온 메르스 사태는 과연 우리에게 제대로 된 국가, 정부가 존재하는지 심각한 물음표를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온 국민이,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단 한명도 구조해내지 못한 정부에 대해 우리는 분노했고, 메르스가 방방곡곡에서 우리 국민을 공격하는데 우왕좌왕하면서 ‘비밀주의’로 일관하려 했던 정부에 대해 우리는 또한번 분노했습니다.

이 정부에 과연 재난관리시스템이란 게 있긴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국민사이에 퍼져나간 생각들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이었습니다. ‘내가 알아서 내 살길 찾자’이지요.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관통한 현상은 이 정부가 국민보다는 윗사람의 심기를 살피는 데 훨씬 더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었다는 겁니다. 통탄할 일이지요.

윗사람, 곧 대통령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초월적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파동 때 대통령은 그것이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한다며 자기 당 소속의원들이 직접 선출한 원내대표를 콕 찍어 내쫓아버렸습니다. 이게 삼권분립 원칙을 허문 거 아닌가요.

그 과정에서 보여준 그 당 소속 대표나 의원들의 행동거지는 독립된 헌법기관이어야 할 국회의원들이 스스로를 윗사람에 종속된 하수인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이러니 교수들이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겠지요.

윗사람은 ‘일방통행’에 길들여진 사람인 것 같습니다. 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이 나라를 찍어눌렀던 ‘유신’은 대통령에게는 유일한 통치방식으로 내재화되어 있어 보입니다. “나는 무조건 옳다”에서 비롯되는 이 ‘신념’은 토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지시’로만 귀결됩니다. 입법부인 국회에서의 여·야간 의견조율 따위는 ‘국정을 마비시키는 한심한 행태’로 매도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뜻을 받들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그것이 곧 ‘진실한’ 정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인 듯 합니다.

대통령은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역사학자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집필진도 공개하지 않는 국정교과서는 ‘가면’을 쓴 교과서가 되겠군요.

대통령은 급기야 경제·노동 관련 ‘관심 법안’들을 직권상정해 처리하라고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에게 대놓고 을러댑니다.

윗사람을 무조건 추종하는 일부 의원들은 법에 따라 할 수밖에 없다고 버티는 국회의장을 향해 할 소리, 못할 소리 다하며 겁박합니다.

원내대표 솎아낼 때와 연출되는 모습들이 판박이이지 않습니까.

대통령에게 삼권분립은 필요없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인식되나 봅니다. 입법부 출신인 행정부 수반의 사고방식이 이렇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윗사람과 그 맹목적 추종자들의 ‘천하무도’ 행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나요. 시민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표’입니다. 표로 이 무도한 행태를 심판해야 합니다.

어지러운 상태에서 또 한해를 보냅니다.

시민 여러분의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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