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온 편지,꽁트) / 정춘모 시인

푸른 하늘의 포물선을 긋는 백구의 향연도 어께위로 낙엽이 흩날리며 서서히 막을 내린다. 필드를 주름잡던 골프광들은 겨울을 보낼 생각에 벌서부터 걱정들이 태산 같다. 집에서 죽치고 있자니 마나님들 뿌루퉁한 얼굴을 보는 것도 두렵고 자칫 마나님 비위를 건드렸다간 그나마 밥한 그릇도 못 얻어먹을 처지라 나오느니 한숨이다.

이래저래 비 맞은 장 닭이 되어 비실비실 모이는 곳이 실내 골프장 (돔)이다. 머지않아 황천길에 꽃상여를 타고 만가를 부를 노구(老軀)들이지만 입들은 살아서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잘도 뻥긋거린다. 그런 무리 속에도 끼어 귀동냥이나 하는 내 처지가 영락없는 꾸어다 논 보리자루다.

그들의 행적은 한날한시 똑 같다. 처음엔 교회 이야기가 서두가 되다 슬쩍 화제를 돌려 골프로 본성들이 나온다. 이 친구 골프 자세는 어떻고. 저 친구자세는 어쩌고. 하다가. 결국 자기 자랑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 골프를 배우려고 생각중인데 골프의 광인 친구가 반강제로 지갑을 뺏다시피 하여 나름 계약을 해버렸다. 미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한 날치기다. 어쩌겠어요? 기왕 시작 하신거니 어머니도 같이 배우시라고 아들이 골프채를 사주었다.

실내골프장(돔)은 모두가 선생이다. 이사람 저사람 중구난방 자세를 잡아주지만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할지 혼란스러워 도통 능률이 오르지를 않는다.

그럴 때면 애꿎은 하나님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욕심이 과하면 사망에 이르노니 남의눈에 티만 보지 말고 내 눈에 들보를 보면서 공을 똑바로 바라보고, 꼬리뼈는 쇠말뚝 박듯 땅에 쳐 박고 열 십자가를 그리며 팔을 뒤로 돌리는 동시에 서서히 ‘스윙’을 하라는 것이다. 난 그 소리를 귀에서 고름이 나올 정도로 골백번은 들었지만 골프의 소질이 없어서 그런지 연신 도끼질만 해댔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세를 잡아준답시고, ‘마눌씨’ 앞에 송사리 때들처럼 달라붙어 스킨십 하는 꼴이 민망해 슬그머니 부화가나 자존심이 상해 골프고 뭐고 집어치고 싶지만 그동안 투자한 돈이 아까워 아예 ‘티칭프로’ 한태 한 달 동안을 배우니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

실내 골프장에는 퍼팅만 연습하는 홀이 1번 홀서부터 4번 홀까지 있다. 1번 홀은 산세가 험악해 백마고지 탈환하듯 육탄전으로 밀어 붙여 한방에 따먹어야 한 덴다. 2번 홀은 죽음의 계곡이라 누구든 이 숲속에 빠지면 코피가 터져 나온다고 한다. 3번 홀은 황금 물결치듯 능실 능실 흘러 들어간다고 하여 아녀자 가슴 만지듯 살며시 밀어붙이라는 것이다. 4번 홀은 난공불락이라 이런 여자를 만나면 뼈도 못 추리고 녹초가 되어버린다고 한대나, 필드의 명칭들이 발짝마다 음담패설이라 골프를 배우려면 입이 걸어져 어쩔 수 없이 그 분위기에 동화 될 수밖에 없다.

클럽도 제대로 못 다루는 햇병아리에게 퍼팅도 배워야 된다며 커피내기를 하자고 꼬인다. 차라리 귀신의 꼬리를 붙잡고 커피 나오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 났지 언감생심 그들을 당하겠는가? 내가 퍼팅을 하는 날엔 모두들 느긋해진다. 꼴찌가 다사기 때문에 따 놓은 당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해겨울에 내기해서 진 커피 값이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조금보태서 기둥뿌리가 2개나 빠져버렸다고 엄살을 떨면, 한다는 소리들이 프로가 되려면 대들보도 빠질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능청을 떤다.

실내에서는 아무리 연습을 해야 실력이 늘지 않으니까 실제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필드로 끌려 나갔다. 부부가 화목하게 살려면 신랑각시가 첫 날밤에 머리를 잘 얹어야 평생을 해복하게 산다고 조선시대 구닥다리 결혼식을 들쳐가며 저녁을 빼서먹을 구실을 또 만드는 것이다.

필드로 끌려 나가면 황당해진다. 실내 에서는 있는 모션 없는 모션 다써가며 지극정성으로 가르치더니 실전에 와서는 공이 물에 빠지든 나무속으로 들어가던 드라이버를 치던 아연을 치던 입을 함구하고 자기들것 만 신경을 쓴다. 웬 놈에 규칙은 그리도 까다로운지 앞으로가면 벌금이다. 뒤로 가면 반측이다 하며 골프는 신사 깨임이라며 유식한 체는 다한다.

신사케임이 안이라 사각지대의 너 죽고 나살자는 깨임 같다. 승리를 목전 두고 홀을 노리는 눈초리는 마치 개구리를 노리는 사악한 독사 같다. 상대방이 넣기를 바라는 공자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은 없다. 상대방이 실수를 해야 내가 이긴다는 강박관념에 가진 실력도 발휘를 못하는 것이 어찌 신사께 임이라 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리고 숨이 턱에 차 헉헉대고 배운 골프가 햇수로 3년째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아임 클레이지 어바웃 골프 (i'm crazy about golf)의 미치광이 되어 버렸다. 극성스럽게 가르쳐준 분들께 늘 감사하고, 암! 그동안 저장해났던 커피 값도 되돌려 받아야지…….  

◆ 시인 약력 : 1943년 하남시 출생, 1993년 캐나다 이민, ‘지구문학’으로 등단, 지구문학작가회의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캐나다문인협회 회원, 전 국제펜클럽 캐나다지부 회장, 전 캐나다한글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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