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이야기) 문학진 새정치민주연합 하남지역위원장

 

 지하철은 신속성, 정시성 등 편리함 때문에 이용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과 인접한 하남시 같은 경우 다수 시민들이 서울로 출퇴근 또는 이동하고 있어 지하철에 대한 열망이 크다.

 시민들의 지하철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하남시가 지하철 하남 연장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도 오래된 일이다.

그 경과를 보자. 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영훈 의원(작고·1992~2000년 재임)과 민선 1~2기 손영채 시장(1995~2002년 재임) 재직 당시 하남시는 원활한 교통대책의 일환으로 경전철 도입을 적극 검토한 바 있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경전철을 건설코자 한 계획이었으나 사업타당성 등 검토 결과 민간 기업들이 내켜하지 않아 결국 2000년에 이 계획은 백지화됐다.

사업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가장 큰 이유는 하남시 면적의 90%이상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묶여 있어 인구가 정체상태였으므로 텅 빈 지하철 운행이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 점에 착안해서(인구가 늘어야 한다!) 2006~2008년 국회 건설교통위로 상임위를 옮겼다.

이때 필자는 여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 소속으로, 상임위가 열릴 때마다 장관, 차관에게 당시 추진되고 있던 수도권 신도시 후보지로 하남이 최적지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결국 2007년 1월 수도권 신도시로 동탄(경기 화성시)이 낙점되어 1차 작전은 실패했다. 다만 이 시기(2006년) 1차적 대안으로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BRT(간선급행 버스체계:버스전용차로 운용)사업을 수도권교통본부와 협의하여 도입했다.

하남시는 하남시대로 2006년 7월 경기도에 도시철도 기본계획에 반영해줄 것을 건의했고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강동구 등과 꾸준히 협의절차를 밟았다.

필자는 2007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지하철 하남 연장과 관련한 의견을 물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낸 바 있다.

2007년 신도시 유치는 좌절됐지만 드디어 2009년 6월 미사지구 보금자리 주택단지 조성이 결정, 발표됐다.

이때부터 하남 지하철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2009. 9. 25. 국토부, 지하철 5호선 상일동~미사지구 연장 결정 △2010. 3. 미사지구~풍산지구~덕풍동~신장동 구간 연장을 예비타당성 조사대상 사업으로 선정, 그리고 2011년 4월 기획재정부가 “5호선 하남연장 타당성 있다”로 결론을 내게 된다.

이것은 무얼 말하는가? 미사지구는 2014년 6월에 입주가 시작되었고 2018년께 입주가 완료되면 3만8천여세대, 10만여 명의 인구가 유입되게 된다. 특단의 교통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하철 하남선은 설계 작업 등을 거쳐 2014년 7월 첫 삽을 뜨게 되었다.

지하철 9호선 하남연장 문제는 필자가 국회에 있을 때도 여러 차례에 걸쳐 국토부와 협의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는 강동구와 남양주시도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국토부가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만큼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하남 지하철은 이런 ‘역사’를 지니고 있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서명운동 등에 참여해 힘을 모아준 것도 일익을 담당했다.

1957년 소련이 우주선 스푸트니크1호를 발사했다. 미국인들은 소련에 선수를 빼앗긴 것에 크게 당황했다. ‘스푸트니크 쇼크’였다.

1961년 대통령에 당선된 존 F.케네디는 미국인들에게 선언했다. “나는 이 나라가 1960년대가 지나가기 전에 달에 인간을 착륙시킨 뒤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할 것임을 믿습니다.”

1969년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달 표면을 밟은 우주비행사와 통화하려는 닉슨 대통령에게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락관 프랭크 보먼은 이렇게 말했다. “달 착륙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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