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이야기) 문학진 새정치민주연합 하남지역위원장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문화는 곧 우리의 정신이다. 문화를 하찮게 여기면 정신이 죽는다. 정신이 죽으면 무엇이 남을까?

 대영제국은 대문호 셰익스피어를 대륙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고, 로마와 파리에 세계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문화의 힘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지 물신만능풍조에 빠져 ‘오로지 돈’이다. 1년전 세월호때도 그랬고 현재진행형인 메르스 사태 와중에도 “경제가 죽는다” 타령이 버젓이 나돈다. 경제가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인간다운 실존이다.

일부종교와 종교인들의 행태가 우리 사회에서 걱정거리가 된 것도 오래된 일이다. 가장 큰 이유가 물신 숭배에 있다. ‘더 크게, 더 많이’가 문제다. 예수그리스도와 석가모니의 생애와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종교인 두 분이 있다. 한분은 선법사 주지 원담 스님이고, 또 한분은 구산성지를 지키고 있는 정종득 신부이다. 이들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객산(해발 301m)초입에 있는 선법사(교산동 55-1)는 대한불교태고종 소속으로, 하남 유일의 전통사찰이다. 고즈넉한 이 절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뜰을 지나 구석받이에 국내 유일의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삼각 모양의 바위에 새겨진 채로 조용히 서 있다. 좌상의 높이는 93cm로 아담한 크기이다.

좌상 바로 옆 바위에는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에 옛 석불이 있던 것을 중수하오니 지금 황제의 만세를 기원합니다.”라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태평 2년은 중국의 연호로 고려 5대 임금 경종 2년, 서기 977년을 말한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 건국까지 50여년간 중국이 혼란스런 정세였는데, 고려인들이 중국과 대등하다는 뜻에서 경종을 ‘황제’로 칭한 것이다.

1천년이 넘는 세월을 이 자리에서 지켜낸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보물 981호로 지정돼 있다. 이렇듯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좌상 뒤편의 바위가 갈라져 있고 주변의 석축과 요사채 등이 전통양식에 맞지 않게 시멘트 콘크리트로 처리돼 있는 등 문화유산 관리에 허점을 보이고 있다.

주지 원담 스님은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관리청, 하남시 등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최근엔 국회에도 의견서를 제출했다.

스님은 일선 관료들의 소극적 태도를 못내 아쉬워하면서 시민들의 적극적 관심을 기대하고 있다. 원담 스님은 이와 함께 마애약사여래좌상의 국보로의 격상운동도 벌이고 있다.

1841년 천주교 박해 때 “나는 천주교인이요.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따름”이란 말을 남기고 교수형을 당한 순교자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구산성지(망월동 387-10)도 선법사와 사정은 비슷하다.

하남시 향토유적 4호로 지정돼 있는 구산성지에는 김성우 성인 외에도 8인의 순교자 묘소가 있다.

구산성지는 작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미사강변도시 아파트들로 포위돼있다 시피하다. 14년째 성지를 지키는 정종득 신부는 “사면이 고층 아파트라 성지가 완전히 발가벗겨져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 신부는 과거 이곳에 와 있던 프랑스 신부의 말을 전했다. “프랑스 같으면 향토유적인 성지 주변을 이렇게 개발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정 신부는 미사지구 개발 주체인 LH공사 관계자들과 수도 없이 만나 성지가 성지다운 모습을 최소한으로라도 유지될 수 있는 방안들을 찾고 있다.

그 한 방법이 쪼갠 기와들로 높게 벽을 쌓아 성지를 에워싸는 것인데, 부분 부분 시유지들이 있어 하남시와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선법사 김숙이 신도회장과 구산성지 이종필 사무장은 입을 모아 말한다. “선법사는 하남시 유일 전통사찰이고 구산성지는 하남시 유일의 천주교 성지입니다.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 선조들에 대한예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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