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온 편지> 정충모 시인(캐나다문인협회 회원)

5월 초순경, 아침 6시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전날부터 부슬거리던 비가 출발 직전부터는 장대비로 돌변해 곳곳이 산발적으로 뿌려 돼 속된 표현으로 은근히 뚜껑이 열렸다. “젠장! 가는 날이 장난이라 하더니! 투덜거리고 차에 올라탔어도 비는 여전히 몰아쳤다.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 탓에 피동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관광을 가나 어디를 가도 늘 뒷좌석은 나의 고정 좌석이다. 오늘 역시 자연스럽게 뒷좌석이다. 닭의 머리는 될지언정 호랑이 꼬리는 되지 말자가 나의 좌우명(座右銘)이다. 그런대 캐나다에 와서는 그 마저 추락하여 닭의 꽁지로 살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어지간히 못났다.

‘스쿨버스’ 시설이 안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잡동사니 하나 걸칠 대가 없는 데다 비포장도로라 차가 덜컹거려 커피가 여기 저기 쏟아져 버렸다. “오, 하느님 어찌 이리 심술이 심하십니까? 폭우, 세례도 모자라 커피 세례 까지 주시다니! 순간적으로 하느님을 원망하였지만 이내 마을을 안정시키곤 주님에게 기도를 하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아버지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시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소서, 오늘 저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저의 죄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용서하시고, 용서, 용서…. 평소 잘하던 구절도 오늘 따라 생뚱맞게 더듬거려, 나의 교만함을 이미 주님께서는 간파(看破) 하시곤 겸손 하라는 암시를 주신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졌다, 나를 의식할 때는 어느덧 차는 ‘미들랜드’ 들머리에 들어서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우중충한 날씨는 여전 했다.

십자가의 길 14초소까지 두루 끝내고나니, 12시 미사를 알리는 대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들린다. 그 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사들의 노래로 연상이 되었다. 스르르 눈을 감고 에덴동산을 그리니, 차를 타고 올 때 눅눅했던 마음이 말끔히 씻겨 졌다.

‘Huron’ 최초로 캐나다에서 수녀가 되었다는 인디언 성녀, 그녀 앞에 선 마음이 숙연해진다. 문득 롱팰러의 원작 ‘애반제린’이 떠올랐다. 인디언 촌락에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가브리엘’과 신부 ‘애반제린’이 퇴장할 무렵 영국군이 느닷없이 총성을 울리며 침입하여 둘이는 결혼식에서 뿔뿔이 헤어진다.

그로부터 부부는 만남 하나로 삶의 전부를 투자한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몇 시간 전에 떠났다 하고, 차를 타도, 남편 가브리엘은 앞문에서 타고. 부인 애반제린은 뒷문으로 내리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기며 결국 그들이 만난 곳은 어느 죽음의 요양원,

두 눈이 움퍽 패이고, 백발이 성성한 남편 앞에 몸부림치는 에반젤린의 기도가 뭉클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부부를 이렇게라도 죽음 앞에서 만나게 하여주시니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 기도 속에 남편은 아내의 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감는다.

아마 일반적 기도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하느님 야속합니다. 너무도 야속합니다. 그 허구만은 젊은 나날들을 다 피해가며 이런 죽음 앞에 만나게 하여주신 하느님 너무 잔인 하십니다.” 라고…….

그리고 모든 것이 끝이 났다. 희망도, 공포도, 슬픔도, 마음의 고통과 불안도, 안타까워하던 그리움도 오랜 세월 참아 오던 고뇌도, 에반제린은 차디찬 남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가슴에 껴안으면서 조용히 고개 숙여 기도 드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정말 감사하나이다.”

그들은 비록 이승에서는 부부의 인연은 맺지 못했으나 지금도 태고의 숲은 서 있고, 그 나무 그늘 멀리 떠나 이름 없는 무덤 속에 사랑하던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있다. 아는 이 없고 찾아오는 이 없는 그들은 거기에 그렇게 누워 있는 것이다.

월래 목적은(rosary Sunday) 참석해서 성경의 대한 이야기를 쓸려고 했는데, 거의 천여 명이나 운집한 군중 속에 성경은 고사하고, 그 의식(意識)에 집중하기조차 불가능했다. 더욱이 마이크소리는 울렁거려 ‘주교’님의 선창에 따라 후창을 하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다. 비록 삼천포로 빠진 글이지만 에반제린의 전기를 쓴 것이 그나마 안위가 된다.

‘토론토’로 돌아오는 차 창밖 날씨는 아침과 달리 쾌청했다. 최 신부님 고마워요? 스쿨버스님도 고맙고요? 그리고 “하느님, 내년에는 이런 심술을 부리지 마세요.” 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기도를 했다. 저녁노을에 걸린 해님이 방긋 웃는다.

 ◆시인 약력 : 1943년 하남시 출생, 1993년 캐나다 이민, ‘지구문학’으로 등단, 지구문학작가회의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캐나다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캐나다지부 회장, 캐나다한글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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