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섭 백제문화연구회 회장(역사문화 신지식인)

본 연재에서는 우리민족이 아니면 그 어느 민족의 문화에서 나타날 수 없는 내용을 남미지역과 비교하여 동질성을 찾고자 하였다.

우선 천문과 관련된 숫자에 대한 문자로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절실하고 우선적인 것은 날짜를 헤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숫자의 표기이다.

간단한 손과 발가락 20개 까지는 학습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이상의 날짜를 헤아리는 숫자 수백까지는 문자가 없으면 표기를 할 수가 없다.

계절을 헤아리지 못하면 살아가는 데 고통과 삶에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문자가 숫자를 표기하는 것이다.

괘 부호는 우리민족이 환역(桓易:태양,달,금성)을 바탕으로 창안한 것으로 인류 문자 시원의 부호이다.(『인류문명의 발상지 한국』363쪽 참조)

괘 부호는 환역을 설명하는 부호로서 그 뜻은 양과 음이 만나면 4계절이 된다는 것을 부호로 표시한 것이다.

즉 음양은 달과 태양이 만나면서 4계절을 나타낸다는 역법을 설명한 부호이다.

3효(爻)로 구성된 것은 태양, 달, 금성은 8년만에 만나는 주기를 부호로 표시한 것이 8괘(☰☱☲☳☴☵☶☷)이다.

<그림2>와 같이 마야의 달력에는 8괘의 부호가 포함되어 우리민족이 천문 환역에서 창안한 8괘가 마야문명에 포함되어 있어 우리민족이 건너갔다는 것을 입증하는 천문부호이다.

8괘중에서도 제일 오래된 태호복희(太皞伏羲)의 선천 8괘이며 괘 부호는 우리민족이 만들었다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신산에 가서 하늘에 제사지내고 천하(天河)에서 괘도(卦圖)를 얻었다. 괘도와 삼극(三極)을 포함하여 변화가 끝이 없다. 그 획이 세 번 끊어지고 세 번이어져 위치를 바꾸어 미리 이치를 알아 그 오묘함은 삼극(三極)을 포함하여 변화가 끝이 없다. (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중국 문왕의 후천팔괘를 사용하지 않고 태호복희의 선천팔괘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도 우리민족의 문화와 동질임을 입증하고 있다.(<그림3> 참조)

마야 숫자의 근원이 어디에서 발생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기록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금성의 제단에 다섯 개의 줄과 여덟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조형물이 있는데 이것은 금성의 다섯가지 경로와 그에 해당되는 시간 8년으로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별을 향한길』앤서니 애브니 지음 196쪽)

위의 내용은 마야의 치첸이트사에 남아 있는 금성의 제단 조형물에 나타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다섯 개의 선은 금성의 오행을 표현한 것으로, 숫자 5가 되었고 여덟 개의 점은 금성의 회합주기(8년)로서 점은 숫자 1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윷판에서 점으로 된 것은 하나의 숫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앙 하나의 점은 태양의 주기 1년을 나타내고 있다.

중앙 점 주위 8개의 점은 금성의 1회합‘옥타이 테리스’8년 주기(2920일)를 나타내고 바깥 점 20개는 달과 금성의 성수를 합한 것과 같다. (12 + 8 = 20)

점 하나를 숫자 1로 나타내는 것은 윷판과 마야의 숫자와 동일하다.

마야의 숫자 중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0을 표시한 모양에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의 학자들이 마야인 들은 왜 0을 조개모양이나 달팽

이 그림으로 표시(『마야의 달력』베른트 잉그마르구트 베를레트, 저 198쪽)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뜻을 알지 못하였다.(그림 7 참조)

필자가 0은 우리의 윷놀이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을 본지 18회 연재에서 밝혔다.

마야의 0 표시가 윷가락과 일치하다면 한국에서 이주한 민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천문사상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고도화 되고 오랜 기간 진화의 소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윷놀이를 할 때 가장 구하기 쉬운 <그림4>와 같은 고둥을 윷가락으로 이용 하였으며, 이와 같은 <그림5,6>의 개오지 고둥도 윷가락으로 이용하기에 알맞다.

마야인 들이 0을 달팽이 모양이나 개오지 고둥모양으로 표현한 것은 윷가락으로 이용된 고둥 종류를 설명한 것이다.

0이라는 숫자는 윷가락에서 발생한 것으로(18회, 19회 연재 참조) 개오지 고둥을 윷가락으로 표현한 상형문자로서 가장 알기 쉽게 0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7>은 마야의 숫자 0으로 위가 둥굴다는 표현으로 곡선을 넣었고, <그림 6>의 개오지 고둥과 비교하면 그 모양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

한국에는 개오지 고둥이 6종류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으며, 서식지로는 노랑 개오지는 경남 남해, 거제시, 경북과 점박이 개오지는 강원, 경북, 전남, 경남 등으로 조간대의 암반에 서식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수심이 깊은 곳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림

4,5,6>의 내용은 『한국 패류도감』 민덕기 편저, 참조함)

고조선 시대는 화폐로 이용한 것으로 모양이 아름답고 단단하여 장식으로 사용한 잘 알려진 패류이다.

열대지방에서는 흔한 것으로 윷가락으로 사용하기 알맞은 개오지 고둥이며, 윷가락에서 발생한 0의 표기에 개오지 고둥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윷가락은 태양과 같이 음양을 표현하는 상징성이 같으며, 동이족 역법에 태양력 1년을 10개월로 정한 것과 같이 윷가락 모양을 열배로 계산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0은 우리문화에서 발생한 윷가락 부호이며, 윷가락에 사용된 개오지

고둥이나 달팽이 모양의 상형문자로 0을 표기한 것은 우리 민족이 이주한 것을 입증하고 있다.

 

 

 

 

 

 

 

위와 같이 가장 원초적인 숫자에서 우리민족이 창안한 윷놀이까지 0의 기호와 괘(卦) 음양의 부호까지 우리의 문화가 마야인 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즉 윷과 괘는 역법을 설명하는데 이용된 것으로 숫자도 역법에서 발생한 것으로 동질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학문적인 내용은 특수한 것으로 윷이 발생한 한국의 남부지역을 보다 더 주시하게 된다.(『인류문명의 발상지 한국』379쪽 참조)

0과 관련된 숫자가 지금까지 아라비아 또는 인도라고 보았지만 마야 문명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그 중간에 동이족 문화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숫자이외에도 고도화된 것은 동이족에 의하여 발생한 침술로서 마야문명에서도 침술이 이용되었다는 것과 침을 놓는 혈의 자리도 일치한 부분이 있다.(『우리민족의 대이동』손성태, 지음 246쪽 참조)

현대 의학이 발달한 유럽에서도 침술은 발달하지 않았는데 유독 동양 의학에서만 침술과 뜸이 발달하고 대중화 되었다는 것은 발생 근원에 대한 의문이 앞선다.

침술은 신석기 시대 돌 침인 폄석(砭石)에서 시작된 것으로 관련된 유물이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면 송평동 패총에서 5천 년 전의 돌침이 발굴되어 침의 기원지가 한반도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침구(鍼灸)가 발달하게 되는 과정을 유추해 보면 고대의 의술은 무속인이 하는 것으로 태양숭배의 천군(天君)에 의하여 의료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의사(醫師)라는 의(醫)자는 무당‘의’자로 고대는 귀신에 의해서 병이 든다고 믿었기에 무당이 의술에 관여 하였다.

침술 과정을 보면 침을 놓게 되면 붉은 피가 솟아오르는 것은 어둠을 헤치고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막혀있는 기를 통하게 한다는 뜻과 같다. 즉 떠오르는 태양을 가장 숭배한 우리민족에 의하여 침술이 발달 할 수 밖에 없다.

이와 함께 뜸은 음양이 교차하는 방법이며 그 시원도 천군(天君)에 의한 의술의 기초가 발달한다.

최근 한의학계에서 밝혀낸 자료에서도 중국의 황제 내경의 침술편은 고려가 기원이며, 송나라 철종 원무8년(서기1093년) 고려가 헌납한 침구경 원본 9권을 중국에 전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제 내경은 음양오행 관 이론을 전개한 내용이 기본으로 환역의 천문이 발달한 곳에서만 발생하는 의술이 침구이다. 죽음과 관련된 병을 고치려고 심오한 생각과 다각적인 노력을 하게 되며 그 중에서 하늘의 매개자 천군은 침술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다.

우리말 침이라는 어원도 뚫고 솟아나는 것으로 밝음이 솟는 아침과 입에서 흘리는 침도 모두 같은 어원을 사용하고 있다. 침술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의 문화로서 그 시원의 발생지가 극동지역인 한반도임을 알 수 있다.

붉은 피는 태양의 정기로 보면서 막힌 혈을 통하게 한다거나 죽은피를 뽑아낸다는 침술은 극동지역의 떠오르는 태양을 숭배한 사상과 일치하고 있다.

태양 숭배에서 동쪽의 문화가 중원보다 사상적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탄생과 시원을 중요시 하는 창의성이 발휘되면서 사상적으로 활성화하는 촉진제가 된다.

멕시코 마야문명에서도 침술을 이용하였다는 것이 밝혀지므로 서 중국에는 고려시대 침술이 전해진 것으로 마야는 보다 앞선 시기로 침술전파 시기나 문화적으로는 중국과 맞지 않다.

또 다른 면으로는 인디언 들이 5개의 공기 돌을 가지고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그 내용을 열거 하였다.(『우리민족의 대이동』손성태, 지음 150쪽 참조)

우리가 자칫 생각하면 단순한 놀이로 생각 할 수 있으나 공기놀이는 금성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금성이 하늘에서 5가지 운행을 하는 5행에서 나온 것으로 5개의 돌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것과 공중에 던져서 떨어지기 전에 잡는다든가 하는 것은 금성이 오르내리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유물로는 곡옥(曲玉)이 있으며 곡옥은 한국과 일본에서는 출토되고 있으나 중국에는 출토의 빈도가 미미한 편이다. 그 이유는 떠오르는 태양을 숭배하는 아침의 문화인 탄생을 뜻하는 유물이 곡옥이기 때문이다.

또한 손성태씨의 저서에서 가장 의미 있게 보여 지는 내용은 7개의 가지를 가진 칠지도(七支刀)와 같은 유물이 마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우리민족의 대이동』손성태, 지음 186쪽 참조)

마야 인들의 칠지도는 흑요석을 깨어서 만들었기에 그 모양이 불규칙 하지만 그러한 칼을 만들게 된 뜻은 같다고 보는 것이다.

백제에서 일본에 보낸 칠지도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 뜻은 7이라는 성수에서 본다면, 우리의 장례문화에서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위에 올려놓는 장례 풍속이 있다.

7이라는 숫자는 북두칠성에서 발생한 성수로서 하늘로 인도하는 별로 인식되어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북두칠성의 모양이 사람이 죽은 관을 이끌고 가는 모양으로 보기도 한다.

칠지도를 소지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위엄을 나타내는 권위적인 제사장의 칼로서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백제에서 일본에 하사한 칠지도가 대표적인 칼로서 마야문명과 백제와의 관련성을 표현하는 유물이다.

도시 구조에서도 백제의 도읍지는 5방 5부제와 구성된 것과 같이 아스택 제국의 수도‘태흐고고(Texcoco)’에는 신전을 중심으로 네 구역으로 나누어 씨족이 살고 있는 것과 같다.(위의 저서 28쪽 참조)

백제는 5방 5부제로 중앙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구분하여 동부, 서부, 남부, 북부로 행정 구역을 초기부터 구분하였던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들이 백제지역에서 성행하였던 문화로서 그 중에 칠지도는 백제에서 일본에 보낸 유물이 유일하다.

지금 까지 열거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장거리를 항해하는 어려움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을 떠나서 바다를 향해 집단 이주한다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이 앞서게 된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게 된 것은 신앙으로 새를 숭배하는 신의 계시가 있었고 또한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된 것은 금성에서 발생한 물의 신(神) 용왕을 믿었던 것이다.

제정일치 사회의 믿음은 절대적이며, 그 이전에 태양 새가 나는 방향인 일본의 아스카(비조(飛鳥))지역과 중국의 요서 지역으로 진출한 것도 금성의 아침별과 저녁별의 위치로 찾아간 것이다.

아침의 문화인 금성을 믿는 민족은 항상 태양을 따라 다녀야 한다는 사상에 의하여 해가 뜨는 동쪽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북미에는 조성되어 있지 않는 금성의 문화재가 백제의 해가는 길 동쪽, 멕시코 지역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백제인 들의 태양숭배에 의하여 집단이주하여 터전을 잡은 것이 역력히 들어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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