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하남의 불교유적 학술대회를 보고

하남시는 최근 15만 여명의 인구에서 향후 4~5년 후면 36만 명의 중급 규모의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국내 최대의 대형쇼핑몰이 들어오며 4년제 종합대학과 패션복합타운 등 대규모 사업들이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적어도 경제적 발전상은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하남은 선진미래 도시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을 망각한 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 바로 우리의 조상이자 하남의 역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체 정신문화 부분을 팽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남은 한성백제 하남위례성의 주요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근 송파구가 풍납토성을 초기백제의 도성이라며 막대한 예산투자와 함께 한성백제의 산실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각종 방송과 주요 언론에서는 풍남토성이 조성 당시 아파트 5층 높이의 거대한 성곽을 유지한 성으로 초기 백제의 도성임을 강조하며 초기백제의 주요 역사가 자기네 역사로 대대적인 홍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자치 단체와 함께 풍납토성의 복원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며 풍납토성이 마치 백제의 도성이고 송파구가 백제역사의 시발지라는 인식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4일 하남시에서는 하남문화원 주관으로 제6회 학술대회로 ‘하남의 불교역사’라는 주제로 문화관계자들과 시민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학술토론을 가졌다.

이날 학술대회는 불교문화를 놓고 하남의 백제문화와 연계된 근거를 훑어보고 또한 하남이 초기 백제역사의 중심지임을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중요한 자리였다. 하남의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초기로 논의 됐으나 정작 중요한 백제시대의 근거 제시는 미흡한 아쉬움을 남겼다.

토론 발제자들 역시 하남은 초기백제의 주요무대로 인식을 같이하는 등 하남이 온조가 나라를 처음 세워 이룩한 한성백제의 근거지였음을 공감하면서도 아직까지 지역문화재 발굴과 연구가 덜 이뤄져 논증할 수 없다는 입장을 안타깝게 토로했다.

제대로 된 유적유물조차 발견되지 않은 그것도 석성이 아닌 흙으로 조성된 풍납토성이 어찌 융성했던 한성백제의 도성이 될 수 있을까.

당시 힘의 균형이 엇비슷했던 고구려, 백제, 신라 중 고구려와 신라는 도성이 석축(석성)으로 조성 된데다 규모 또한 300~500만평이었다. 이에 견줘볼 때 과연 20만여 평의 규모에 불과한 그 것도 흙으로 쌓여진 풍납토성이 백제의 수도였을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다.

이에 비해 하남은 춘궁동과 교산동 일대가 그동안 발굴된 유적유물만 가지고도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전혀 손색이 없음에 설득을 사고 있다. 문제는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발굴을 하다가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중지, 백제의 도읍지라는 결과보고를 하지 못해 선조의 올바른 역사를 강력하게 제시하지 못하는데 있다.

불교를 숭상했던 삼국시대 도성은 왕도불교를 지향하며 도성에 사찰이 융성했던 것은 상식이다. 하남 교산동 건물지들이 즐비한 자리에는 천왕사지를 비롯해 금당지, 목탑지, 춘궁동의 신복선사, 동사지 등의 대형 사찰지가 수 십 개에 이른다.

당시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전국 최대라고 자랑하는 황룡사지나 분황사지 등이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로 내세우고 있다. 하남의 경우도 천왕사지나 동사지 등은 신라의 대표적 사찰규모와 비슷하거나 뛰어넘는 규모로 조사 발굴됐었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송파구는 내세울만한 규모의 절터는 고사하고 하남에는 수없이 많은 교각 건물터나 석축, 와편 등의 발굴됨과 반대로 유적유물조차 거의 없는 풍납토성을 백제의 도성이자 도읍지로 받들고 있어 양심 있는 사학자들로부터 역사왜곡의 지적을 받고 있다.

문제는 하남이 이를 반증하고 한성백제의 무대가 하남이었음을 증명해 보일 때 송파의 역사왜곡도 수그러들 것이다. 즉 하남은 지금이라도 역사의 현장을 재 발굴하고 연구 논증해 하남이 백제의 도읍지였음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의 발굴 제시된 근거로도 하남이 한성백제 하남위례성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보다 체계적인 발굴과 연구 및 논증을 해야 타 자치단체의 이설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하남은 제 역사를 제 것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고, 우리조상이자 백제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하남시민들 조차 하남의 역사를 올바로 정립시키지 못한 체 송파구의 주장에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다.

결국 하남은 문화재 발굴과 연구에 대해 아낌없는 투자가 이뤄질 때 우리조상의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당당하게 백제 도읍지의 후손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박필기 기자 ppk9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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