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훈 동민치과 원장

 

 임플란트 OO 만원. 일간지에, 주간지에, 혹은 지하철, 버스 광고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치과 관련 광고들. 이제는 낯설지 않다. ‘역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려면 OO만원이 최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치과의사로서도 그 금액이 혹할 정도면, 환자들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

 많은 환자들이, 치과는 잘 아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들 한다. 속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반쯤은 동의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 동안, 상식 이하의 치과 진료로 고통 받았던 환자들이 있었다는 점, 또한 그리고 그러한 진료들에 많은 비용을 지불한 환자들이 있었다는 점은 치과의사 집단에서 충분히 반성할 만하다.

 하지만, 다수의 정당한 치과의사들이 가진 전문적 식견과 노력을 그런 식으로 바라봐 준다는 것은 꽤나 속상하다. 아는 집 아니면 속을 수 있다는 생각이 단지 치과의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것이라면, 직업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개원한 치과의사로 개인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진료비에 대한 부분이다. 보험진료는 정찰제나 다름없어, 정상적으로 적용할 경우, 분쟁의 여지가 없으나, 그 외적인 진료는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의료기관에 자율성이 부여되어 있다.

특히나 치과진료는 필연적으로 환자들에게 경제적인 선택이 주어지다 보니, 어느 정도 흥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가 되어있다. 이는 대한 민국의 의료제도에서 어느 정도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는 정부에서 의료기관을 관리하고, 수가도 조정하도록 되어있으나,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진료에 대해서는 진료 및 진료비에 대한 자유를 시장에 맡겨 놓았다. 그런 이유로 비보험 진료 분야에서는, 구조적으로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타협의 소지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비보험 진료가 많은 치과 진료의 특성상, 관례적으로, “정” 혹은 “인사치레” 정도의 진료비 할인도 있다. 최근 몇 년간 다양한 형태의 병/의원들이 초저수가 할인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경영을 해왔다.

마치 대형 마트들의 할인 경쟁을 보는 듯한 현상이 치과의료 현장 곳곳에서 일어났고, 언론 등에서는 가격 하락의 순기능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누구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같은 서비스를 받는다면, 소비자로서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시장을 통한 가격 형성의 좋은 점이라고 본다면, 현재까지는 치과의료 현장에서는 좋은 일만 벌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형성된 진료비 할인 경쟁에는 함정이 있다. 시장에서 공급자는 누구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산품이라면, 하락한 가격에서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인건비를 줄인다거나, 효율적인 생산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등의 노력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형태의 일들이 치과의료현장에서도 벌어진다. 하락한 진료비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치과의사는 몇 가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첫 번째로 인건비의 절감, 두 번째로 각종 비용의 절감, 세 번째로 진료 효율성의 개선이다. 그 외에도 과거 제도가 허술할 때는 소득세를 조절하기도 했었지만, 그 방법은 불가능해졌다고 믿는다.

저수가 상황에서, 병/의원의 경영자의 선택은 위 세가지를 적절히 조합하여 박리다매 형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없다. 치과의사의 행위를 위임한다거나, 저가의 무허가 재료를 사용한다거나, 정해진 술식을 생략한다거나 하는 등의 부정적 행위가 벌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여기에 의료 윤리에 대한 고민이 있다. 기존의 수익이 기대되지 않는 서비스에서 기존만큼의 노력과 비용을 들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그 정도를 어디까지 윤리적인가로 봐야하는 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치과의사는 맞서고, 많은 치과의사는 순응한다. 각종 고발성 기사에서 접하게 되는 수준 이하의 비윤리적 의료 행위는 이런 상황의 극단을 보여준다.

선택은 모두에게 있다. 무엇을 팔고 그 대가를 받는 사람은 그 사실을 안다. 싸고 유용할 수는 있지만, 싸고 고급일 수는 없다. 비싼 것은 항상 고급은 아니지만, 고급일 수는 있다. 가격이 흥정되는 비보험 진료는 이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많은 치과의사들은 스스로의 윤리범위 안에서, 그 의료 서비스를 싸게 제공할 수 있다.

그 서비스가 소비자의 맘에 들 수는 있지만, 고급일 수는 없다. 불행하게도, 상대적으로 비싼 의료 서비스가 항상 고급이지만은 않다는 점이 의료소비자로서 불리한 점이다. 게다가 다른 서비스와는 다르게, 통상적으로 치과의료는, 진료비를 결정한 후에, 진료를 받는 다는 점이다.

제공한 만큼 받는 진료비를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료비만큼 서비스가 제공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 환자로서 또 하나의 불리한 점이다. 이점은 의료 공급자인 치과의사가 굳은 심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료비에 상관없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강요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 사회에는 상대적으로 고가의 진료비를 책정한 의료기관이 매우 적어, 많은 의료소비자가 같은 진단 하에서라면, 고가의 진료비를 부담하고, 수준 이하의 진료를 받을 확률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짧지 않지만 치과의사로 살아온 15년동안, 많은 좋은 치과의사들을 만났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직업을 주어진 사명이라 믿고 꿋꿋이 버티고 계신 분들이 많다. 서서히 세상이 변한다. 개인의 신념으로 버텨나가기 힘들어지는 상황들이 안팎으로 벌어진다.

변화하는 의료정책과 각종 시장경제의 논리들은, 작은 신념으로 꿋꿋이 서 계시던 분들을 서서히 몰아세운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의료인과 의료 소비자들은 감수해야 한다. 그 핵심에 저가 혹은 할인된 진료수가가 있다. 그것이 사회 전반적인 합의라면, 공급자인 치과의사와 소비자인 환자가 받아들여야 한다.

치과의사 스스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거나, 환자가 고급 서비스를 요구한다는 것은 둘 모두에게 불가능한 선택이 된다. 할인된 저가의 진료비 수준에서 공급자와 소비자의 최선은, 싸지만 만족할 정도인 것이다.

초저가 할인을 하는 병/의원에서 만족하면 그것이 좋은 서비스인 것이고, 그것이 불만족스러우면 다른 서비스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초저가 할인 병/의원이 정상적인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진료를 받는다면, 많은 분들이 만족할 것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어린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여러 기준 중에 하나가 책임을 진다는 점이다. 선택은 자신에 대한 책임이다. 저수가 할인 진료를 제공하기로 선택한 치과의사와 그것을 선택한 환자. 자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지 않으면 좋겠다. 조금 더 성숙한 어른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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