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섭 백제문화연구회 회장(역사문화 신지식인)

역사문화에 대해서 논하게 되면 대부분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하면서 지나간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외면하는 사람이 있으나 문화재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고분은 엄청난 경제적 가치와 우리의 위상과 자존심을 높이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 침략을 막아내는 중요한 증거이다.

앞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문화 전쟁이 심하고 문화자원의 경제적 가치와 역사 침략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본문에서는 세계 최대의 민둥산 고분을 왜 파괴하려고 했는지 보다 큰 숨겨진 음모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가 외국 여행을 가면 무엇보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해서 유적과 박물관을 관람하게 된다.

관심을 갖고 문화유적을 관람하는 이유는 그 민족에 대한 모든 이력서가 포함되어 있고 수 천 년전의 사람들과 영적으로 교감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고분군들이 산재되어 있고 그들이 조성한 고대국가의 도읍지 유적과 고분에 포함된 인류문명의 내용을 전시 하면 세계의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모여 들게 된다.

우리는 먹고사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고 하면서도 잘살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소흘이 하면서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사지구 개발도 명품도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대의 고분을 보존하여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조성해야 함에도, 피라미드 보다 더 중요한 유적을 허물어 아파트를 짓겠다는 우둔한 발상을 하고 있다.

먹고살기 위한 국제적인 경쟁이 점점 치열해 지는 생존의 법칙에서 민둥산 고분과 같은 문화자원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아보기로 한 다. 그 무엇보다 신성시해야 할 세계최대의 문화유산을 식민사학이 방해를 하고 그 하수인인 공무원이 파괴 할 정도라면 그 사회는 적폐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조작하고 있는 식민사학을 본문에서는 ‘사(史)피아’로 보면서, 세월호사건 앞전에 왜정시대부터 지금까지 조직을 키워온 사피아의 횡포는 국가를 망하게 하려는 징조의 조짐이 이미 예고된 상태이다.(왼쪽 사진은 사피아들이 제작한 한사군 지도)

 민둥산 고분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을 수 있는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중대한 유적을 이번까지 4번째 철저히 파괴하려다가 발각된 의도는 다음과 같은 음모가 포함되어 있다.

 역사 침공을 해온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중국의 한사군(漢四郡)설이 잘못 되었음을 입증하는 유적이 민둥산 금성분이다.

 왜정시대 일본인 들이 조선은 식민지로부터 출발하였다는 것을 인식 시키기 위해서 삼국초기에 남한은 일본이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와 북한은 중국의 한사군이 다스렸다는 학설이다.

 천문학적 돈으로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식민지 역사를 고착시킨 주 인물이 친일파 이병도이며, 그 제자들이 고대사를 지배하면서 한사군 설을 지금도 신봉하고 있다.

 그 결과로서 금성분(일명: 전방후원분)은 일본에서 발생한 무덤이며, 한강권에는 없는 무덤이라 하면서 발견 될 때 마다 은폐하거나 파괴를 일삼아 왔었다.

이러한 방해로 인하여 영호남 지역에서 금성분이 발견될 때마다 일본에서는 임나일본부의 유적이라고 톱기사로 쾌재를 불렀고 우리학계에서는 묵인해 왔었다.

교수 박사 학위라는 ‘사피아’ 면허증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은 2005년도 금성분이 한강권에 대규모 발견되었다는 언론과 보존 요청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는 핵폭탄과 같은 사건이며, 또한 그들이 발굴한 결과 고분이 아니라고 한 것까지 사회단체가 강제 발굴하여 금성분임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를 언론으로 보도한 기자를 그 들의 제자들로 결집된 언론노조가 국내에 있지 못하게 쫓아내었다는 것을 공공연이 자랑하면서 조사에서 진술할 정도로 언론 노조의 횡포가 심각한 실정이다.

우리의 언론이 얼마나 식민사학을 옹호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예로서 학맥으로 연결된 사피아 조직의 뿌리를 알 수 있다.

또한 오랫동안 발굴한 하남시 백제왕도 유적을 은폐한 사건까지 발각될 위기에 놓여 있기에 민둥산 고분을 파괴하게 된 것이다.

고대 고분의 규모는 피장자의 위상과 관련된 만큼 함부로 크게 조성 할 수 없는 것은 이웃나라와 연계되어 있는 백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백제를 ‘구다라’ 즉 큰 나라라고 하는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지금도 식민사학이 사찰지 하나 발견된 적이 없는 작은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을 백제왕도라고 버젓이 홍보하면서 사피아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식민사학자들이 민둥산 고분을 파괴하고자하는, 보다 숨은 큰 뜻은 그들이 주장한 한사군 설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파괴를 자행한 것이다. 평양에 중국의 한사군이 있었다는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한사군은 백제와 국경을 마주보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지금까지 한사군 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백제 초기를 작은 부족국가로 우선 축소하지 않으면 한사군설이 성립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작은 규모의 몽촌토성(약6만평)이나 풍납토성(약22만평)을 백제의 왕도라고 주장하여 부족국가로 왜곡해야 만이 한사군설이 먹혀들기에 치밀하게 기획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일본의 학자들 보다 더 한층 왜곡의 도수가 높다. 백제초기를 부족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원삼국(原三國)시대라는 학설까지 만들어 주입시키면서 삼국과 삼한이 오랫동안 공존한 것으로 치밀하게 왜곡한 사피아 조직이다.

한사군 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백제는 건국이후에도 4세기 또는 5세기 까지 전라도 지역은 마한이 지배하였다는 학설로 축소 왜곡하고 있다. 몽촌과 풍납토성을 백제의 왕궁이라고 조작한 것은 단순 조작이 아니라 임나일본부와 한사군설을 뒷 받힘하기 위한 ‘사피아’ 들의 음모가 포함되어 있다.

오랫동안 전면발굴을 한 유적을 판독 할 줄 몰라서 백제의 왕도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식민사학의 전통이 무너지기에 이를 고수하고자 하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민둥산 고분은 그 들이 왕도라고 주장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규모와 위치 등에서 전혀 맞지 않고 지금까지 자행한 범죄 행위가 들어나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고분을 적극적으로 파괴한 것이다.

사피아 학설처럼 만약 평양에 한사군이 존재하였다면 하남시 일대에 조성된 거대한 백제초기 왕도유적과 세계 최대의 고분유적이 존재한 것이 밝혀지면 사피아의 학설은 그대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또한 초기부터 막강한 힘을 가진 백제와 국경을 마주하거나 고구려 사이에 한사군이 전혀 있을 수 없게 된다.백제는 일찍이 일본과 중국으로 진출한 강대한 힘을 가진 국가로서 한사군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다면 삼국사기의 기록에 당연히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백제사에는 한사군이라는 기록이 단 한 줄도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내용도 낙랑국(樂浪國)이지 중국의 지배를 받는 행정기관인 한사군은 아니다.

대방국(帶方國)도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우리민족의 소국이며, 대방 낙랑이라는 명칭도 우리나라 고유의 국가명칭으로 중국과 무관한 것이 중국 사서에서 입증되고 있다.

백제는 건국한지 100년도 되지 않아 신라와 치열하게 싸울 만큼 강대한 국가로서 한사군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면『삼국사기』에 단 한 줄도 기록에 없다는 것은 조작한 근거가 된다.

교학사에서 발행한 고등학교 사회과 부도(아래 지도 참조) 교과서에는 한사군이 지배하였다는 경계선을 평양까지 포함시켜 그려 놓았다. 고구려의 소금통로를 차단하고 있는 경계선 표시로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국이라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지도 위에는 ‘한군현 위치 요동 요서 지방설도 있음’ 이라는 글자도 넣어 애매한 표현을 하면서도 지도상으로는 크게 한반도를 다스린 것으로 경계선을 그려 놓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사피아 들의 영악한 숫법으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사피아 조직이 주장하는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후 313년까지 무려 421년간 평양에 있었다면 백제와 치열하게 싸움을 하게 되는데 단 한 줄도『삼국사기』의 기록에 없다.

또한 한사군이 존재하였다는 421년간 중국에는 나라가 5번이나 교체 되었는데도 지방행정기관이 오랫동안 있었다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학설이다.(『인류문명의 발상지 한국』 저서 244쪽 참조) 또한 나라가 5번 교체하고 약 100년 가까이는 한나라가 멸망하여 존재하지 않았어도 지방행정 기관인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설이 그들의 제자로 이어져 지금은 지방 향토지 마다 이를 인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국민의 혈세를 엄청나게 소비하면서 이러한 왜곡된 한사군 내용을 번역하여 외국으로 배포하고 있다는 내용도 인터넷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피아 들이 제작한 한사군지도(그림참조)를 보면 압록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의 소금 통로를 차단하고 평양까지 중국이 다스린 곳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삼국사기』고구려 미천왕편에 보면 미천왕이 왕이 되기 전에 압록강을 이용하여 소금 장사를 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와 중국은 치열하게 싸운 기록에서 소금 수급 통로는 국가의 목숨이 달린 만큼 염철(鹽鐵)의 확보는 철칙이 되고 있다.

철과 소금은 군사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의 생필품이며, 특히 소금통로는 한나라의 생사가 달려 있는 만큼 고구려와 가까운 압록강 바닷길의 소금통로는 차단할 수 없는 염철 논은 역사의 기초 상식에 속한다.

중국에서 해주의 염지(鹽地)를 서로 빼앗기 위해서 진나라와 6국 연합간에 백만의 희생자를 낼 만큼 빼앗길 수 없고, 조선시대 말기 까지만 하여도 소금은 국가의 전매품으로 통제 되었다.

즉 식민사학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여 중국에 도움을 주고 있기에 최근에는 식민사학 해체 사회 운동이 절실하다.

역사를 조작하는 ‘사피아’ 들의 구조와 내막을 자세하게 밝힌 저서가 최근에 발간된 것은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 고대사』라는 저서이다. 이 저서의 내용에는 식민사학의 재생산과 창의력 말살 등을 폭로한 것으로 일류대학에서 시작된 병폐와 속임수를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국민들이 판단하기 어려운 것은 식민사학은 독도문제가 거론되면 동조하는 척 하지만 그 보다 더 무서운 고대사 왜곡음모를 대물림하고 있다. 필자가 공무원으로 그들의 문제점을 지켜보고 연구하지 않으면 전혀 발각되지 않을 만큼 지능화 되어 있다.

민둥산 금성분을 파괴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거리낌 없이 대담하고 익숙하다는 것은 그 만큼 익숙하게 많이 해본 능숙함이 있다.

식민사학의 논리와 맞지 않으면 발굴을 하고도 보고서에 넣지 않거나 또는 적당히 왜곡하여 식민사학에 맞도록 꾸며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해도 이를 문제 삼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서로 봐주기 식으로 세월호 사건과 유사한 범죄 행위가 사학계는 더 극심하다.

먹이사슬로 연결된 식민사학의 구조는 일반인 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결집되어 있어 누구도 이를 견제하는 사람이 없다. 특히 미사리 세계 최대의 고분 파괴 사건은 건설업자와 연결되어 있고 배후가 든든하기에 파괴범의 기세는 너무나 당당하였다.

지능적인 파괴과정을 살펴보면 2005년도부터 방송을 통하여 고분이라고 사회단체가 주장을 하였던 만큼 여론화되어 이목이 집중되었던 유적이다. 문제가 되었던 만큼 공개 발굴을 했어야 함에도 몰래 발굴을 하였다는 것부터 의도적임을 알 수 있다.

인공으로 조성한 유적인가 아니면 그들이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을 구분하는 방법은 고분 형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모자라는 부분은 채우고 돌출된 부분을 깎아내는 방법이기에 축조 방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면 발굴한 뒤에 이를 공개하지 않고 발굴 중에 갑자기 묻어버리고 원형과 삼각이 결합된 형태를 발굴이 끝나지 않았는데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금성분의 묘제는 형태만 없애버리면 일반무덤이 되기에 편법으로 무덤의 모양을 우선 파괴하여 흔적을 지우고자 하였다.

또한 고분은 부장품만 없애거나 바꾸어 놓으면 간단하게 없애 버릴 수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그 시대 유물이 아니라고 우겨도 이를 제재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단합되어 있다.

일본의 마지막 총통 ‘아베 노비유키’ 가 말한 것처럼 조선은 식민지 굴레를 벗어나려면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장담한 것처럼 철저히 교육을 시켜 놓았던 것이다.

역사왜곡이 쉬운 것은 발굴은 감시자가 없기에 언제든지 마음대로 조작이 가능하다. 일반인들로서는 가장 이해가 안 되는 파렵치한 부분으로 조작이 상례화 되어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많은 사람이 참관하고 감시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조작은 왜정시대 평양에서 한사군의 유물이라고 발굴 조작한 사건에서 알 수 있드시 그러한 전통을 이어 받은 식민사학의 뿌리이다.

민둥산 세계 최대의 고분은 모양이 원형과 삼각이 결합된 기하하적인 형태이기에 자연에서는 100% 나올 수 없는 모양이기에 조작이 불가능한 무덤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외형을 우선 파괴하여 알 수 없도록 한 뒤에, 무덤의 부장품은 왜곡하는 것이 단순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정시대와 6.25사변을 거치면서 처참하게 피를 흘린 국가로서 이러한 아픔의 상처를 잊어버리고 국가를 저해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더 어렵다.

일본의 군국화와 독도문제 중국의 동북공정과 북한 등 어느 한쪽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이 적들이 도사리고 있다.

역사학의 사피아 사건과 세월호 사건의 교훈에서 적패를 막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한이 분단된 이유도 관의 병폐로 인하여 동학난이 일어나서 나라가 어지럽게 되자 그 틈을 이용하여 일본이 침략을 하게 된 것으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국민의 혈세로 이들을 도와주고 양성하는 행위를 근절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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