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종섭 백제문화연구 회장/역사문화 신지식인

 

 민둥산 고분 파괴와 같이 한번 없어지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고 무엇보다 절실한 먹고사는 것을 무시한 국제적인 경제 문화자원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좌측 그림1)

 민둥산 고분은 천문에 의한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 조성해야할 유적이라는 것이 다음과 같이 밝혀지고 있다. 고대의 고도화된 고급적인 지혜는 모두 천문에서 발생하게 된다.

 피라미드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지금까지 알 수 없었으나 우리의 문화에서 보면 탄생 또는 부활과 관련된 무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생일에는 고깔모자를 쓰고 생일 밥은 고봉으로 높이는 풍습에서 피라미드는 탄생과 부활의 무덤으로 여러 면에서 밝혀지고 있다.(본문에서는 알기 쉽게 간단하게 표현한 것임, 『인류문명의 발상지 한국』 417쪽 참조)

팔각형과 삼각형이 결합된 민둥산 고분은 피라미드 보다 더 고차원적인 도형이다. 삼각의 떠오르는 태양, 탄생의 상징과 샛별(금성) 8각이 결합된 도형은 희망과 부활을 뜻하는 성스러움이 포함되어 있다.

금성의 사상은 문자의 발생과 군사문화 새시 풍속과 모든 생활 문화에 적용되어 왔었다. <그림 1>과 같이 금성이 제각기 다른 5가지 운행을 하므로 서 금성의 천문을 적용해서 문자와 생활과 제도에 응용된 것이다.

 지금까지 금성분(일명 : 전방후원분)이 한국에서 보다 활성화 되었고 적용된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신성시 하였던 8각 우물과 8각 탑이며, 유물로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수저이다.(좌측 사진2)

 무령왕릉의 수저 모양은 전방후원분 모양이며 세계 유일한 독특한 숟가락 모양이기에 눈여겨 돋보이는 유물이다.

숟가락을 금성분(전방후원분)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임금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좌하는 것은 밥이다. 임금은 지상의 태양이기에 태양을 호위하는 금성과 같은 모양이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손에 쥐기도 어렵고 무거운 손잡이의 모양을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만든 것은 하늘 은하수 천한수(天漢水)에 금성이 운행하는 것은 물고기 꼬리처럼 추진체가 달려 있다는 생각과 탄생과 삶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동요에서도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라는 노랫말에서도 하늘에도 은하수라는 하천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금성의 문화가 한국이 제일 발달한 이유는 지역적으로 극동지역으로 동이, 해동, 동국, 좌해, 등의 명칭으로 아침에 떠오르는 샛별을 숭배하는 아침의 동쪽문화가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할 수밖에 없는 위치이다.

아침의 태양을 뜻하는 조선이라는 국가 이름과 고대 도읍지 명칭이 대부분 아침과 관련되어 있다.(『인류문명의 발상지 한국』 저서 131쪽 참조)

금성은 천한수를 곡선으로 운행하기에 하늘의 용(龍)이자 물의 신(神)이며, 태양의 밝은 빛을 전해주는 것이 봉황으로, 용봉문화는 금성과 태양이 항상 함께하는 천문에서 발생한 문화이다.

조선시대 전 현직 관료를 ‘선비’라고 하였으며 흔히 우리에게는 선비 정신이라는 숭고함을 생각하였으나 한자로도 선비라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고대어 선비는 태양과 금성을 뜻하는 것으로 아침 태양의 나라를 조선이라 하였고 ‘선(sun)’은 서양에서도 태양을 지칭하는 고대어이다.

우리가 물 한 그릇 떠 놓고 ‘비' 나이다 하는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 즉 물을 뜻한다. 물의 신은 용(龍)이며 용은 금성에서 발생 하였기에 ‘선비’라는 어원은 천문으로 태양과 금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비’는 물이며 금성의 대명사로 표현 되었던 고대어로서 제주도 해녀를 ‘비바리’라 하며 그 들이 숨을 내몰아 쉬는 휘파람소리를 ‘숨비’ 등 모두 물과 금성을 동일시하였다.

알파벳 A B C는 떠오르는 태양, 금성, 초생달이며 서양의 ‘비너스’ 여성의 ‘비녀’ 모두 여성과 관련된 금성의 문화이다.(『인류문명의 발상지 한국』저서 참조)

전방후원이라는 기하학적인 민둥산 고분의 도형은 천 수 백년 앞서 형성된 증거가 여러면으로 나타나고 있다.(지면상 생략)

민둥산 고분과 관련된 자료는 단일 박물관을 설립하여도 충분 할 만큼 발생이전과 이후에 나타나는 원류의 자료가 풍부하여 일본보다 앞서는 기초자료가 풍부하다.

일본에는 민둥산 고분과 같은 전방후원분이라는 고분이 알려진 것만도 2500기나 된다고 하며 천황들이 대부분 이러한 모양의 고분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민둥산 고분과 같은 모양의 고분이 일본에서 발생한 무덤으로 알고 국내의 학자들도 이에 동의를 하고 정설처럼 고착되었다. 일본에 전방후원분의 무덤 발생과 관련된 이슈가 된 사건으로는 기마민족 일본 열도 정복설이다.(다음호에 연재)

일본 오사카 사카이(堺)라는 지역에 있는 전방후원분은 크기가 세계 제일 큰 무덤이라고 자랑하는 고분으로 길이가 486m이다. 일본에 있는 전방후원분이 대체로 4세기부터 6세기 말까지 성행한 무덤으로 한성 백제와 교류가 심할 때 조성된 무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은 물론 국내의 학자들까지 전방후원분이 일본에서 발생한 묘제로 보면서, 백제인 들은 일본 왕실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일본 왕실은 독자적인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로 보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 당시 일본의 야마도 정권이 한국의 남쪽에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구를 두고 남한을 다스렸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은 물론 일본이 한국을 침입 할 때 마다 고토회복(古土回復)을 주장하면서 한반도 침략을 당위성으로 앞세운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여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전방후원분이 속속들이 발견되면서 골치가 되었던 것은 임나일본부설이 확실하다는 것이 일본 아사이 신문에 일면 톱으로 실리기도 하였다.

가야지역에 전방후원분이 연달아 발견되었고 조성시기가 일본의 전방후원분 보다 뒤떨어진 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영산강 유역에 일본의 무역센터와 같은 세력, 또는 일본에 갔다가 다시 망명한 사람이라는 설과, 마한의 토착 세력이라는 다양한 설이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것 보다 시대가 뒤떨어진 것으로 일본에서 건너온 무덤이라는 것이 순리라고 보게 된 것이다. 백제에서 건너간 무덤 양식이라면 한강권에서 전방후원분이 발견되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없다고 하는 것이 정설로 굳어진 상태이다.

한강권에서 전방후원분이 발견되면 백제에서 건너간 묘제로서 일본의 고대 국가를 세운 주체도 꼼짝 못하게 백제인으로, 일본 천황들이 백제인 이라는 것이 입증이 되는 것이다.

민둥산 고분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게 된 사회단체는 식민사학이 파괴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게 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배경도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검토를 해 보면 중국의 문헌인 송서(宋書)는 당대에 살았던 사람이 쓴 역사서로서 정사(正史)중의 정사로 알려질 만큼 신뢰하는 저서에 백제가 중국의 요서지역을 다스린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백제군(百濟郡)이라는 치소(治所)를 두고 수많은 백제왕들의 이름과 활동한 기록 등 또한 그 당시 일본으로 진출한 백제의 활동 등에서 세계 최대의 고분을 조성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으로 규모가 커야만 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분봉국(分封國)인 일본 인덕천황의 전방후원분이 지금까지 세계 최대의 규모(길이 486m)로서 본국인 백제의 무덤은 이보다 훨씬 규모가 커야하는 것이 고대국가의 위상이다.

민둥산 금성분은 길이가 680m이고 황산도 770m나 되는 고분으로 본국 백제의 위상에 걸 맞는 규모이다. 한성시대 백제가 왜 일본이나 중국으로 진출하게 되었는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신라나 고구려를 견제하기위한 것으로 지금도 북한을 견제하기위해서 중국과 교류하는 유사한 면이 포함되어 있다.

제정일치사회에서 구다라(일본말로 백제를 큰 태양이라 뜻) 백제는 금성인 아침별인 일본과 저녁별인 중국 요서 지역을 거느려야 한다는 당위성이 포함되어 있다.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하늘의 뜻인 천문사상이 지배 할 만큼 어길 수 없는 국가의 제도가 되었다. <그림 3>과 같이 고대의 동서방향(지금보다 23도 정도 지구의 세차운동에 의하여 기울어진 각도)으로 백제의 분봉국인 금성의 제국을 세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위치이다. (좌측은 그림3)

 백제 한성시대 일본과 중국으로 진출한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라면 세계 최대의 고분을 조성한 것이 이상 할리 없다.

또한 일본에 왕인 박사등 수많은 학자들을 파견한 것도 한성시대로서 수많은 백제문화가 일본으로 전수되었음에도 유독 고분만은 백제의 것이 아니라는 지금까지의 학설이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방후원분은 천문학이 발달하지 않으면 조성될 수 없는 고분으로 그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을 만큼 미개하여 백제의 수많은 장인과 학자들이 건너간 것이다. 지금도 백제 것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말로서 전해지는 ‘구다라 나이’ 즉 백제 것이 아니라는 말의 뜻이다.

백제의 유물과 유적은 한국에 있는 것보다 일본에 있는 것이 더 많고 한국은 빈약하기에 종주국으로서는 백제 문화재 확보가 더욱 중요 할 수밖에 없다.

민둥산 금성분을 없앤다는 아이러니한 문제점은 근대사 동양 최초의 여성 대통령 재임 시에 비너스의 상징인 금성분을 없앤다는 결과이다.

금성의 사상에서 아침별로 진출한 일본의 아스카와 저녁별로 진출한 중국의 요서로서 그 당시 백제를 중심으로 삼국이 동맹이 되었기에 동양 평화의 상징성이 있는 금성분 도형이다.

문화재는 포함된 스토리텔링에 의하여 가치가 평가되는 만큼 풍부한 자료가 포함된 민둥산 고분은 그 어떤 유적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앞으로 연재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민둥산 고분의 복원은 인류문명의 발상지와 함께 한성백제사의 핵심이 되고 있다.

고분은 보수성이 강하고 죽음에 대한 철학이 포함되어 있는 기하학적인 모양의 고분은 심오한 사상에서 조성된 만큼 내용이 풍부한 문화 자원이기에 부가가치가 높은 경제자원이다.

민둥산 고분의 단일 박물관을 건립해도 전시 자료면에서 우리나라 그 어느 박물관 보다 관련된 사상적인 유물과 자료가 많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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