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섭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역사문화 신지식인)

유물에 대하여 지금까지 잘못 판단한 것이 들어나면서, 조작 할 수 없는 거대한 유구(遺構)를 파괴한 것은 문화재 말살 의도가 들어난 것이다. 인위로 조성한 유적임이 발굴에서 입증되어도 몰래 파괴한 것이 민둥산 고분이다.

식민사학에 의하여 오랫동안 진실을 왜곡하면서 귀중한 관광 자원을 훼손하여 왔던 것이 발각된 것이다.

전문분야라 해서 누구도 문제 삼기 어렵다는 자신감에서, 거리낌 없이 과감하게 귀중한 문화재를 파괴하여 왔었다.  

 ◇…2010년 백제문화를 탐방하는 일본의 관광객 80명을 공주 부여를 방문하기 전에 시험적으로 초청하여 처음으로 하남시에 소재한 백제왕도 유적을 안내한 적이 있다. (사진1참조)

 이들 관광객들이 공주와 부여까지 백제문화권 모두를 답사하고 결론을 내린 것은 한결같이 하남시 한성백제 유적에서 제일 감명을 많이 받았다고 하였다. 관광객이 방문 하든 날 하남시 슈퍼 점포의 과자류가 모두 동이 나자 점포 주인이 문밖까지 나와서 깍듯이 절을 할 정도 였다.

문화 관광 대국이 될 수 있음에도 우리 자신이 이를 가로 막고 있기에 얼마나 식민사학의 병폐가 심한가를 알 수 있다. 관광자원을 저해하고 있기에 경제적인 손실과 민족의 자긍심까지 훼손되는 병폐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 편입과 일본의 독도문제 까지 식민사학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본 자세한 내용은 뒤편에 연재함)

지금까지 민둥산 고분은 물론 하남시 500년 왕도까지 백제 유물이 없다고 하면서 방치 부정하여 왔었다.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유물에 대한 논리가 진실인가 또는 거짓인가를 구분해 보기로 한다.

유물에 대한 것을 밝히면 지금까지 한강권에서 얼마나 유물 논리로 민족사를 왜곡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서는 유물왜곡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빌미로 지금까지 식민사학이 최후의 보루로 아성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유물왜곡도 오래가면 탄로가 나게 마련이며 그 동안 상투적인 방법도 이제는 더 이상 쓸모없게 된 것이다. 토기와 기와의 유물을 쉽게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으로는 손톱으로 끗게 되면 부스러지는 강도가 약한 연질(軟質)의 토기나 기와가 있다.

이러한 연질의 토기나 기와는 불의 온도를 높이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잘 깨어지고 물을 머금어 흙이 묻어 날 만큼 약하여 사용하기가 어렵다. 즉 물이 베어 나거나 새는 토기나 기와를 사용하다가 지금과 같이 단단한 토기나 기와를 생산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기술의 발달로서 지금의 컴퓨터 발달과 비교가 되는 혁신적인 기술의 변화이다.

지금의 오지그릇과 같이 단단한 것을 어느 시대부터 생산하기 시작하였는가를 구분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유물의 연대가 제대로 구분하게 되면 역사를 왜곡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잘 부셔지는 연질(軟質)과 쇠 소리가 나는 단단한 경질(硬質)을 시대구분하게 되면 지금과 같이 유물로서 시기를 마음대로 조작 할 수 없게 된다. 토기나 기와의 작은 조각만으로도 시대를 쉽게 구분하게 되면 지금과 같이 역사 왜곡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삼국시대 기와의 연대를 구분 할 수 있는 연호(年號)가 새겨진 와편(瓦片)을 북한산성을 등산하는 중에 지금의 성벽 밖에 기와가 산재되어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살펴보게 되었다.

 <사진 2>와 같이 “화원년을사(和元年乙巳)”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진 지금의 기와와 같이 검은색의 단단한 재질이다. 년표에서 찾아보면 서기 465년이며 탈락된 앞의 글자와 함께 “경화원년을사(京和元年乙巳)”로서 송(宋)나라 폐제(廢帝)의 연호로서 서기465년 8월에서 11월까지 단 3개월만 사용한 연호이다.(『위례성 백제사』3권 참조)

 서기 465년은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서기 475년) 시기보다 10년 앞선 유물로서, 지금의 기와보다 더 단단한 검은색의 경질이다. 서기 465년에 제작된 기와를 다른 유물과 비교하면 하남시와 한강권은 물론 임진강에 널려 있는 잘 부셔지는 연질 기와는 모두 백제시대 또는 그보다 앞선 삼한시대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물이다.

 지금까지 하남시에 백제유물이 없다고 주장과 한강권 수많은 유적들이 고구려나 신라로 보았던 것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증거로서 유물로 더 이상 왜곡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기와를 굽는 가마의 규모나 모든 면에서 쇠 소리가 나는 경질 토기(硬質土器)는 경질기와 보다 먼저 생산됨을 쉽게 알 수 있다. 높은 온도의 철을 생산하고 다룰 줄 아는 시대라면 경질 토기와 기와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축적이 확보된 것이다.

가야 시대의 토기가 쇠 소리가 날 만큼 단단한 경질로서 대조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연질 토기가 널려있는 하남시는 물론 한강권 유적은 모두 백제의 유적이자 그 보다 앞선 유적이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특히 민둥산 고분 발굴에서도 연질토기편이 산재되어 있어 유물로서 전방후원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하남시 일대에는 백제 유물이 없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며, 특히 아차산에서 발굴된 유물도 연질로서 재평가해야 되는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차산과 연결된 장성(長城)이 망우리 까지 연결되어 있는 성벽의 유적이 확연히 남아 있어 고구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아차산 장성과 유사한 성(城)은 신림동 난곡의 호암산 석벽장성(石壁長城)과 같이 백제 도성 쪽을 보호하는 외곽 장성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아차산을 고구려유적이라고 잘못 주장한 관계로 망우리 까지 연결된 장성(長城)이 있다는 것을 숨겨왔던 것이다. 고구려가 변방인 아차산에 장성을 쌓을 이유가 없기에 아차산 장성을 숨겨 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유물은 조작이 가능하고 조작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엉터리 편년으로 마음대로 시대를 설정하여 유적파괴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한강권 유적 대부분이 백제의 유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얼마나 왜곡이 심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철저히 결속된 식민사학의 태두리가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유물로 쉽게 구분하는 연질과 경질 유물에 대한 편년을 지금까지 거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한산성 근초고왕 시대의 세계 최대의 기와(약19kg:지금의 기와 약 4kg)와 경화 원년(서기465년)의 기와를 비교한 결과 경질 기와가 생산될 시기는 4세기 말 무렵으로 보며, 경질 토기는 이보다 먼저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술은 후퇴하지 않는다는 진리에서 편년을 알 수 있는 유물의 발견으로 지금과 같이 기준 없이 속여 왔던 식민사학의 유물왜곡이 발각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서기 465년에는 기와나 토기가 모두 단단한 경질로서 하남시에 엄청난 양의 연질 유물들이 모두 백제시대나 그 이전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단이 하남시에는 백제시대의 유물이 없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알 수 있고 민둥산 고분 역시 상투적인 유물로 역사를 왜곡한 것이 발각된 것이다.

 유물 왜곡을 밥 먹듯 얼마나 심한가를 알 수 있도록 발각된 것은 가짜 거북선 총통이 국보 274호로 지정될 만큼 발굴자가 주장하면 모두 이의 없이 통과 시키는 허점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발굴단이 백제유적을 말살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은 하남시에 신라의 황룡사 목탑보다 더 큰 규모의 목탑이 3기나 발굴이 되었어도 유물 연대를 조작하면서 왜곡하였다.

불교가 도입 되면서 먼저 건립하는 탑은 목탑(木塔)이며 이를 한결같이 국민들이 알지 못하도록 은폐 속여 왔던 허구성이 들어난 것이다.

황룡사 목탑은 한변이 18m로 높이는 83m로 알려질 만큼 거대하고 신라에서도 국력을 기울려 건립한 탑이다. 그러나 하남시 목탑은 한변이 24m 또는 27m로 로서 황룡사 목탑보다 더 큰 목탑 3기를 발굴해 놓고도 왜곡하는 현실만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하남시 유적을 두고 유물이 없다고 국민들을 속이면서 말살한 것이 먹혀들자 민둥산 고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파괴한 것이다.

민둥산 고분을 인정하게 되면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범죄 행위가 발각되기에 민둥산 고분을 적극적으로 없애고자 범행을 하게 된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많은 죄를 지었기에 경화원년(서기465년) 명문의 와편이 역사를 바로 잡게 하는 계기의 증거가 된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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