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논단) 한종섭 사단법인백제문화연구회 회장

언론으로 크게 여론화 되었던 민둥산 유적을 만약 없애게 된 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으로 주시하고 있다는 것조차 무시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고분 유적의 여파는 우리가 선택한 근대사 동양최초의 여성 대통령에게 까지 누를 끼치는 문화 행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유구에 대한 증거를 몰래 은폐하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 확신 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창조경제를 달성하자고 외치고 있는데 세계최대 규모의 관광자원인 피라미드 보다 더 큰 고분을 파괴하면서 까지 역행하고 있다.

◆…지난 1회 연재에서는 민둥산 고분이 자연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기하학적인 앞은 둥글고 뒤는 삼각형 꼬리가 달린 모양에서 전방후원분 임을 입증했다. 2회 연재에서는 발굴결과 전방후원분 특유의 계단식 형태가 나타나서 입증되었다.

이번 연재는 전면 발굴에서 인공으로 조성한 흙다짐한 유적의 증거를 확보 하므로 서 그 들이 서둘러 유구(遺構)를 파괴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2005년도 문화재청 관계자는 민둥산이 인공이 아니고 자연이며 조사 결과 고분도 없다고 방송으로 발표한 것이 모두 잘못됨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하남시에서 거대한 백제왕도가 발굴(황룡사 목탑보다 더큰 목탑 3기) 되어도 백제유물이 없다고 은폐한 것을 민둥산 고분에도 써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의 근본은 유물이 아니라 모양에 있고 발생시기와 소멸 시기도 알 수 없다.

지금도 민묘(民墓)에 꼬리가 달려 있는 전통이 남아 있어 유물로 전방후원분을 결정 짓는 단계가 아님에도 문화재청은 유물이 없어서 전방후원분이 아니라고 분구를 파괴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사진1>은 인공 또는 자연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유구를 전면 발굴한 사진이다. 발굴한 결과 모자라는 부분은 채우고 남는 부분은 깎아낸 흔적과 계단식의 층위까지 발굴되어 거대한 유구(遺構)를 인위로 조성한 유적이 확인된 것이다.

 즉 기존에 있었던 야산을 전방후원(前方後圓) 모양으로 조성하려면 깎아내고 채우고(사진2) 해야 만이 기하학적인 모양이 조성된다. <사진1>과 같이 유구를 전면 발굴 한 것은 전방후원분 모양이 인위인가 자연인가를 알아내고자하는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길이 680m나 되는 거대한 규모의 전방후원의 모양은 자연에서는 전혀 나올 수없는 기하학적인 형상이다. 민둥산을 발굴하여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 밝혀지면 그 동안 하남시 유적을 은폐 조작한 것이 들어나기 때문에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진1>과 같이 대 규모발굴을 해 놓고도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것을 확인 시키지 않고 몰래 파괴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동안 고분이 없다, 자연 지형이라고 주장한 장본인이 주무 계장이 되어 발굴을 하였기 때문에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 탄로가 날까봐 공개 없이 서둘러 파괴한 것이다.

엄청난 혈세를 낭비 하면서 까지 발굴한 유일한 공정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더 이상 논할 가치조차 없는 그들이다.

유구(遺構)를 은폐 조작한 사람들이 제일 조작이 쉬운 유물을 그대로 둘리 없다. 지금까지 써먹던 유물 운운하고 있으나 전방후원분에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없을 만큼 발생과 소멸 시기 등이 밝혀진 것이 없다. 지금도 전방후원분 모양과 같은 꼬리가 달린 민묘에 대한 전통이 있기에 믿을 수 없는 말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사진2> 는 인공을 제일 많이 가해야 모양이 나올 수 있는 원형과 방형이 접합되는 부분에 인위로 흙을 채워서 높인 부분의 인공 토층이 발견된 사진이다. 사람이 조성한 토층의 단면은 <사진2>와 같이 각종 다른 색의 흙이 혼합되어 있다.

또한 점토를 단단하게 다진 인공을 가한 흔적을 누구나 자연토층과 자세하게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인위로 채운 토층과 전방후원분 특유의 계단식 사진등 많은 증거를 확보 하지 않았다면 조작이 쉬운 유물로 그 들의 의도대로 쉽게 파괴하고 입막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까지 무려 4번이나 파괴를 하거나 은폐하였기에 꼬리가 길면 잡힐 수밖에 없다.

이성산성에서 작은 규모의 전방후원분이 발굴 되었을 때 서울대 최몽룡 교수 가 애원 하다시피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하면 사학계 모두가 공멸한다고 애원 하다 시피 경고하고 멈추기를 호소하였다.

또한 가죽가방에 송곳을 아무리 감추고자 해도 삐져나온다는 비유를 하면서 까지 노교수가 호소를 하였으나 오히려 지금까지 반성은커녕 도를 넘는 행동을 하고 있다.(그 당시 촬영한 증거 동영상 있음)

이러한 행동은 피라미드를 훼손한 영국을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탄하고 있다. 이보다 세계 최대 고분을 그것도 문화재청 지도아래 공무원 집단이 결제하여 자국의 유적을 파괴한 것은 말문이 막힐 정도이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기 까지는 지속적으로 은폐 파괴하여 오던 관습에서 불감증과 잘못된 내성이 길러져서 막다른 길까지 오게 된 것이다. 유적 파괴는 그 당시만 넘어가면 될 것이라 생각 하지만 영원히 문제가 되어 지탄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국민의 혈세를 수백억 들여서 한성백제 문화관을 건립하여 풍납토성이 왕궁지라고 왜곡 축소하여 외국인이나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백제는 불교 국가로서 불교사지 하나 발견된 적이 없는 몽촌토성이나 침수지대인 풍납토성을 백제왕궁이라고 버젓이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현주소 이다.

국민들을 속이려고 해서도 안되며, 진실이 아닌 것은 결코 오래 가지 않기에 모두가 공멸한다고 애원하는 경험많은 노교수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니까 덩달아 힘 있는 편에 앞장서고 있는 꼴이다. 일정시대 조선의 마지막 총통 아베노부유키가 떠나면서 남긴 말은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지 교육을 심어 놓았다.

식민지 노예를 벗어나려면 100년 이상 걸린다는 말로 장담을 하였다. 우리는 역사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찬란한 민족의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있어 아베노부유키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몽촌토성을 왕궁이라고 하다가 또 풍납토성을 발굴하고 난뒤 왕궁이라고 하드니 요즈음 궁지에 몰리니까 또 몽촌토성을 20년 만에 발굴한다고 한다.

몽촌토성은 규모가 6만평 정도이며 경사진 곳을 제외 하면 한사람 지주의 경작면적에 지나지 않고 대규모 발굴한 결과 초석하나 발굴되지 않았다. 그 어떤 빌미를 얻고자 하는지는 몰라도 전혀 왕도가 될 수 없고 위성(衛城)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당시 신라나 고구려 왕도의 면적이 수백만평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지, 그 어떤 유적이 발굴되어도 왕도가 될 수 없기에 시선을 오도하고자하는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호에 계속)

<사진1> 엄청난 규모로 발굴한 민둥산 유적 <사진 2> 인위로 흙을 다져서 보축한 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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