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박승배 전 KBS보도본부 부주간

 

 “인간에게 왜 불평등이 시작된 것 인가.” 이러한 명제는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돌이켜 보게 하는 뜻있는 화두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의 저자이자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자크 룻소 (1712∼1778)는 이러한 불평등의 기원은 인간이 경작(耕作)을 시작하며 자기 땅에 경계를 표시하는 데서부터 시작 됐다고 보고 있다. 즉, 말뚝을 박는데 서부터 불평등이 시작 됐다고 보고 있다.

  룻소는 “인간은 본래 고립 분산하여, 자기보존과 연민이라는 본능만을 순응해서 자기만족의 생활을 하다가 재산의 사유(私有)가 시작되고 산업 발전에 따라 불평등이 심해졌으며, 국가는 그 빈부(貧富)의 차를 합법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의에 의해서 사회를 재건하려는 가능성은자연인의 선성(善性)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최근 서울 근교 하남 항동 마을에서 발생한 자그마한 국도(國道) 망실사건 현장을 가보았다. 하남시의 작은 동내 항동마을은 수 년 전만해도 전형적인 농촌마을 이었다. 옛날부터 산길로 들어서는 아늑한 오솔길이 있었고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옹달샘이 있었다. 그리고 논이 있고 논 사이로 사람 다닐 길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말뚝이 없어도 남의 땅을 넘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오솔길도 사라지고 물길도 끊겨 버렸다. 땅에 경계를 짓는 말뚝과 이어서 제방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뚝이 박혀가며, 행정력은 실종되고, 법과 질서가 사라지는 야릇한 모습의 마을로 변해갔다.

 주인이 합법적으로 사유지에 말뚝을 박아서 경계표시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름답던 오솔길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땅의 소유자가 없애 버렸다면 아쉬워도 이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말뚝질이 지나쳐 마지막 남았던 국도(國道)를 자기 밭 아래로 밀어 넣어 경사지로 망실시키고 길 입구를 차단, 은폐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설치물을 세워서도 안 된다. 이럴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

 도로가 있어야 할 입구 부근에는 발각을 피한다는 액땜으로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는 소문과 또한 주민들의 입막음을 위해 이 길이 끝나는 부근 민가 쪽에다 작은 휴게 공간을 만들어 동내 아낙들의 화투 놀이터로 제공했다는 소문이 얼마 전부터 돌고 있는 걸 보면 이런 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적어도 범법사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지 않도록 세심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이 사건은 최근 용기 있는 마을사람에 의해 밝혀졌다. 용기 있는 고발이다. 경기도 하남시 항동 69번지 밭과 맞붙어 발생한 이 도로 망실사건은 당국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 재산이 망실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현장을 확인해 본 결과 530도로는 하남시가 교부한 지적도에는 있으나 실재로 현장에는 없다. 이런 도로를 유야무야 사유화 하려는 얌체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일선 행정기관인 춘궁동주민센터에 국도의 원상복구와 범인처벌을 요구하는 고발장이 제출됐으나 동장은 “이에 대해 우리 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 도로의 관리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이 발을 뺐다고 하니 이도 한심스런 일이다. 그래서 도로의 소유자인 국토해양부와 정부기관의 민원을 총괄하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장이 다시 접수되었다고 한다. 사회정의를 위한 조처이다.

 말뚝은 박아야 할 곳에 박아야 한다. 그리고 박아야 할 사람이 박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치이다. 이 마을에서 말뚝이 박혀야 할 곳은 국도인 530도로이다. 이 말뚝은 도로의 주인인 국가가 박아야 한다. 관리하거나 소유하는 행정기관이 책임지고 박아야 한다. 행정기관이 이를 기피한다면 사회정의가 사라진다. 혼란이 온다.

 이 말뚝은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든 사유(私有)의 불평등 말뚝이 아니고 평등의 말뚝이다. 이러한 평등의 말뚝이 이 마을에서 잘 관리되고 존중될 때 마을은 발전하게 된다.

 조용하고 아름답던 항동마을에 그나마 남아 있던 국도530도로가 행정력과 법질서가 도외시된 채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용기 있는 고발자와 사회정의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불법으로 사라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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