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서 전강남대학교 겸임교수<정치학박사>

 하남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거기엔 백제가 있다. 백제는 한 때 중국까지 진출했고 일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중원의 대국가였다. 그러나 한국역사에서 백제는 버려진 채 남아 있다. 신라와 고구려의 역사에 가려 백제역사는 철저하게 외면과 무시를 당해 왔고, 어떤 경우엔 왜곡 되어진 경우도 상당하다.우리는 단지 국사 교과서를 통해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고 온순한 사람들이 살았던 나라, 몇몇 사람들이 일본에 백제의 문화를 전파해준 나라가 우리가 배운 백제의 모든 것이었다.

 설마 이것이 백제의 모든 것은 아닐 것이다.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475년 공주로 천도하기 전가지 약 500년 동안의 한성백제, 이후 60여년간 머물렀던 웅진백제(공주) 그리고 120여년간의 사비백제(부여)로 이어져 약 7백년간을 지탱해온 생명력 있는 국가였다. 한성백제의 경우 하나의 국가가 한 도시에서 5백년 이상을 지탱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이다. 한성백제는 조선왕조 5백년에 비견되는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오늘날, 백제는 어디에 있는가? 백제는 교과서 한귀퉁이에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KBS에서 근초고왕을 방영하면서 백제가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잊혀졌던 백제가 다시 소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초고왕은 4세기경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였다. 고구려에 광개토왕이 있었다면 백제엔 근초고왕이 있었다. 역사에서 버림받아왔던 백제가 우리 역사의 일부였음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특히 하남에서, 한성백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하남의 역사이고 뿌리이자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최근 하남시가 백제의 첫 도읍지일 가능성이 높은 자료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고 유물과 유적들이 등장하면서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소수의 몇몇 학자들 중심으로 하남위례성이 하남시 춘궁동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철저하게 외면당해오던 터에 젊고 양심 있는 학자들, 그리고 지역의 향토사 연구자들이 하남위례성이 춘궁동이었음을 밝히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동안 역사학계에서는 백제의 도읍지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몽촌토성, 풍납토성 그리고 하남시 춘궁동 등 세 곳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수차례의 발굴과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에서는 도읍지임을 주장할만한 결정적인 증좌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최근 하남에서는 춘궁동 동사지가 백제시대 절터일 가능성을 정부에서 공식 인정했다는 언론의 보도는 하남이 하남위례성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수도 없이 발견되는 백제시대 기와, 엄청난 크기의 심초석, 제단, 주춧돌과 건물 터 등을 비롯한 유물과 유적이 하남이 백제의 땅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하남에 백제의 혼이 담겨 있다고 낱낱이 밝히고 있다.

양심적인 학자들과 지역연구자들이 하남은 백제의 발원지이고 기원이었다고 외치고 있다. 그림에도 굳이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텼성에 혹시 개인적 이해관계나 집단적 방어망이 아니길 바란다. 백제의 소고 외듣고, 백제의 혼의 울림을 듣고 백제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 근초고왕이 고구려와 신라를 향해, 일본을 향해 진격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어느 책의 제목처럼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강찬석·이희진)를 찾아야 한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아니 우리가 역사에서 내버린 백제의 첫 도읍지를 찾는 일은 “공정한 사회” 이상으로 “공정한 역사”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충청남도는 연례적으로 대규모의 ‘대(大)백제’축제를 개최하면서 수익도 올리고 국제적인 마켓팅도 한다. 이제 우리도 나서야 한다. 먼저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경기도가 앞장 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 하남시가 앞장서야 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당연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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