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계 청동보살 첫 출토, 두 성간 역사적 중요 사료

 서기 7세기 후반 세워진 구마모토현 기쿠치성에서는 지난 9일 백제인들의 기술 지도로 축성(築城)되었음을 뒷받침하는 백제계 불상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백제인들이 축성을 지도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왔지만, 이를 입증해주는 유물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기쿠치 성 유적을 발굴 중인 구마모토현립장식고분관은 “지난달 말 기쿠치 성 내부 서쪽 저수지의 1.5m 지하에서 7세기 후반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백제계 청동보살입상을 발굴했다”고 밝히고 기쿠치 성 온코소세이칸(溫故創生館)에서 이 불상을 일반에 공개했다.


 표면이 많이 부식된 채 출토된 이 청동보살입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고 두 손으로는 무언가를 쥐고 있으며 신체의 옆면은 S자형으로 돼 있다. 아래쪽에는 불상을 받침대에 꽂아 고정할 수 있도록 뾰족한 돌기가 붙어 있다. 돌기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12.7cm, 불상 부분 높이는 9.7cm, 폭은 3cm이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이 불상이 7세기 후반에 제작된 백제계 불상으로 보고 있다. 규슈(九州)대의 오니시 슈야(大西修也) 명예교수는 불상의 크기, 천의와 돌기의 모습 등으로 미루어 백제 멸망 직후인 660년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 문화청의 이와사 고하라(巖佐光晴) 주임조사관은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650∼675년에 만들어졌으며 부분적으로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양식”이라고 평가했다.


 이 불상의 사진을 살펴본 국립중앙박물관의 민병찬 학예연구관은 “부분적으로 6세기 양식과 7세기 양식이 섞여 있지만 얼굴이나 신체의 옆선 등으로 미루어 백제계 불상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 연구관은 “한반도 백제 땅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백제 유민이 일본으로 건너가 구마모토 현지 양식을 일부 반영해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불상 출토의 가장 큰 의미는 기쿠치 성의 축성 과정을 좀 더 정확히 밝혀줄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쿠치 성은 7세기 후반 야마토(大和) 정권 때 축성된 산성이다. 당시 한반도에서 삼국 간의 전쟁이 치열해지는 등 동아시아의 정세가 긴박하게 전개되자 야마토 정권이 서일본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11개 산성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 “일본에 망명한 백제 귀족들의 지도와 기술에 의해 건설됐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물증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불상은 그 중요한 물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발굴책임자인 오타 유키히로(大田幸博) 구마모토현립장식고분관장은 “기쿠치 성은 경기 하남시의 이성산성과 구조가 흡사하다”면서 “이번 불상 발굴은 기쿠치 성 등 구마모토 지역 고대 산성과 백제의 관계를 입증하는 중요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이번 백제계 보살입상은 7세기 후반 한일 문화교류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필기 기자 news@ehan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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