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강병덕 - 더불어민주당 (전)정책위부의장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새삼 일본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무역도발을 저지른 배경에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조장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아베 신조 등 집권 자민당이 있으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허약한 일본 민주주의에 있다는 양국 석학들의 진단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전 서경식 도쿄 게이자이大 교수(68)와 다카하시 데스야 도쿄大 교수(63)는 현대 일본사회를 분석한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민주화는 일본 스스로가 이룬 게 아니라 미국 등 연합군이 강요해 이뤄진 것으로 일본인의 성과가 아니다”라며 “도금(鍍金)된 포장이 없어지면 각종 제도나 사고, 지배층 개개인에 자리 잡고 있던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두 교수의 분석을 따르면 일본의 무역도발은 우연한 것이 아니며,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일본 자민당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반복되고 강화될 수 있는 사안이다. 故김대중 대통령께서 생전에 예견(2006년 전남대 특강, ‘한반도의 현실과 4대국’)하신 대로 일본에는 정치세력에 의한 우경화를 견제할 민주주의의 주체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우경화는 왜곡된 ‘역사미화’라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그릇된 역사관과 맞물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미궁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군사적 경쟁을 촉발하고 결국에는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위협하는 불쏘시개로 작동할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올바른 대응방향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외교 및 경제적 측면을 강조한다. 외교적으로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응을 해 나가는 한편 일본의 경제보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부품·소재·장비 등 일본에 의지해 오던 제조업 핵심기술의 국산화를 통해 기술 독립을 준비해 나가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미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민간차원에서의 자발적 일본 불매운동으로 아베 정권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불매 운동의 여파로 국산 대체품 수요가 크게 늘어나 그간 기술력은 갖고 있으나 일본제품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다수의 국내 중소 제조업체에 일감이 몰리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총칼을 앞세운 36년의 피의 강점기를 끊임없이 근대화 통치기간이라고 주장하는 나라, 정치인 30%가 우익 DNA의 세습정치인으로 구성된 자민당이 집권하는 나라, 이식된 민주주의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는 나라, 두 교수의 주장처럼 통치의 수단으로 도발을 얼마든지 반복하고 강화할 수 있는 나라, 바로 이 나라가 일본이다. 때문에 이러한 일본과의 충돌을 단지 외교적으로 신속히 봉합하려는 시도는 무엇보다도 신중해야 한다. 정치권이나 시민이나 위기의 근원을 꿰뚫어 보는 힘을 길러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을 극복하는 진정한 극일(克日)과는 거리가 먼 곁다리치기만 반복할 뿐이다.

일본 시민사회도 이제 자국의 역사왜곡과 우경화에 대해 ‘한국 시민들과 국제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배워나갈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역사와 정치를 바꾸는 것은 그 나라의 시민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을 보다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본의 그것과는 달리 자생적이며 견고한 것이다. 미군정에 의해 서구의 민주주의가 이식된 것은 유사하지만 이후 419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촛불혁명 등 진정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진화하고 있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제 지방자치분권이 그 뿌리를 견고히 내려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어왔던 국민주권은 중앙집권 체제의 사상적 기초였다. 국민의 주권은 중앙정부에 위임되고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헌법과 법령으로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자율성이 허용되는 자치단체였다. 이에 비해 주민주권은 중앙의 이익보다는 지방분권적 가치의 실현을 추구하고, 공공 서비스의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발전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지역의 경쟁력, 도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치개혁이다. 20대 국회가 해결하지 못한 지방자치분권을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이자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피와 땀, 열정으로 지켜낸 우리의 민주주의, 이러한 민주주의가 오늘의 대만민국을 만들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며 더 강해졌고 성숙해진 시민의 나라다. 더 견고한 나라,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지방자치분권은 민주주의의 꽃이다. 이제 지방자치분권의 뿌리를 더욱 견고히 내리자. 이것이 지난 8.15일 광복절 축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며,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극일, 일본을 극복하는 극일(克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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