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하남이 유명한데는 검단산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성산과 남한산이 역사적 명산으로 백제문화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는데 반해 역사와는 아랑곳 하지않는듯 보이지만 정작 그렇지 않다. 검단산에 얽혀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결코 이성산이나 남한산에 뒤처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배제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다.


 검단산은 하남의 역사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 검단산은 하남인의 정신적 지주이며 현세에서는 등산코스로 각광받으며 세인들에 의해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본지에서는 신년을 맞아 검단산에 대해 조명해 보고 나아가 올바로 알고 바로잡아 검단산이 주는 교훈을 되새기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하남의 정신적 지주…그리고 건강 가꾸기의 장(場)


 하남시에 위치한 검단산은 예봉산과 함께 팔당계곡을 만든 산이다. 산 정상에서 팔당호주변의 시원한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일품이다. 홑산으로 하나의 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검단산은 검단산(657m)-고추봉(566m)-용마산(597m)을 거쳐 광주북쪽까지 길게 이어진다. 검단산은 육산이면서도 옹골찬 산세와 산행내내 팔당호의 탁트인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최근에는 백제때 동명제를 지내던 제단이 발굴되어 더욱 그 명성을 얻고 있는데 백제 때는 외침을 막는 요새로서의 역할도 컸던 곳이다. 해발 650m의 산으로 일일등산 코스로도 서울근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산이다.


 산행 초입은 잡목이 우거져 야산의 느낌을 주지만 중간쯤 오르면 어느 산 못지않게 뛰어난 숲과 아름다운 풍경, 고사목이 군데군데 널려 있다. 정상은 넓은 공터로 사방이 확트여 있고 팔당댐은 물론,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류 지점인 양수리 일대를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예봉산, 운길산, 도봉산, 북한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가을에는 정상일대와 능선 곳곳에 억새풀이 출렁이는 풍경이 일품이어서 억새산행지로서도 적격이다.


 하산곡동-(50분)-육모정-(30분)-검단산-(1시간20분)-호국사-(30분)-창우동(총 3시간 10분)이 산으로의 접근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하남시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 쪽이고 다른 하나는 팔당댐 건너 아래배알미리 쪽인데 전자가 접근하는 교통이 편하다. 하산곡동에서 차를 내려 산곡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선다. 매표소를 지나 포장길이 끝나면서 오솔길이 시작된다. 길 주변에는 운동시설물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그 시설물들이 끝나는 데에서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경사가 매우 가파른다. 길의 분위기는 설악산 오세암에서 마등령을 오르는 것 같다.


 가파른 길이 끝나고 능선에 올라서면 육모정이 반긴다. 정자 못미쳐 일명 백곰샘이라고도 하는 샘이 솟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다시 정상을 향해 발길을 떼면 능선을 가득 덮은 억새숲이 길을 가려 마치 파도를 헤치듯이 밀고 나아가게 된다. 약간 지루하다 싶을때 쯤, 산중턱에 노송이 길을 막아선다. 키는 작아도 그늘이 넓어 쉬어가기 좋다. 북쪽으로 계속 가면 잠시 후에는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게 된다. 정상에서의 조망이 일품이다.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북한강 너머에는 예봉산, 운길산이 떠있고 동쪽의 팔당댐에서 토해내는 하얀 물거품이 시원하다.


 남쪽으로 뻗은 능선은 용마산을 솟구치고 있고,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가 달린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의 팔당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물 반, 산반이다. 하산은 아래배알미리 쪽으로 하거나 북쪽으로 능선을 계속 가다가 호국사를 거쳐 하남시 창우동 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광주행 완행버스를 타고가다가 하산곡동 학교앞에서 내린다(첫차 05:23, 4분간격 배차) 혹은 동대문 신설동 쪽에서 573, 573-2번 버스를 타고 하남시까지 간 후 다시 광주행 버스를 갈아타고 하산곡동에서 내린다.


 창우동에서 버스로 시내까지 나와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탄다.


 아래배알미리에서 팔당댐 건너 큰길 가에는 양수리 쪽에서 서울로 오는 완행버스, 시내버스가 수시로 있다.


기(氣)가 강한 검단산


 하남시청에서 동쪽으로 약5km 떨어져 있는 산으로 일설에 의하면 검단선사가 은거하였다 하여 검단산으로 불리운다고 한다. 산행 초입은 야산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산 중간쯤 오르면 어느 산 못지 않게 울창한 숲과 널려진 고사목등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검단산은 풍수 지리적으로는 기(氣)가 강한 산이며, 한강과 접해 있어 산세의 막힘이 없고 동,서,북 3면의 조망이 뛰어 난 산으로 호수같은 팔당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검단'이란 산 이름은 백제 위덕왕 때 검단 이라는 도인(道人)이 은거하여 유래했다는 설과 각처에서 한강을 이용하여 한양으로 들어오는 물산이 이곳에서 검사를 받고 단속을 하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백제 초기 도읍지로 추정되는 위례성의 외성이 있던 산으로 조선시대까지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다 한다. 동쪽으로는 한강과 접해있어 산행이 어려우며 주로 서쪽과 북쪽으로 등로가 개설 되어 있다. 팔당댐 아래쪽 배알미동은 임금을 배알 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며, 이곳에서 동쪽으로 자리한 도미진(都尾津 )은 백제 제4대 개루왕과 도미의 아내와의 슬픈 전설이 있는 곳이다.


 정상은 넓은 공터로 사방이 확 트여 있고 팔당댐은 물론,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류 지점인 양수리 일대를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예봉산, 운길산, 도봉산, 북한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주변이야기) --- 검단정사(黔丹精寺)

                 검단선사를 모시는 곳

                 1000여년 이상된 측백나무 ‘도지정 기념물 시급’


검단선사 모시는 사찰


하지만 신생 절이라 하기에는 모순이 있는 듯하다.


 이곳 관계자에 따르면 검단선사를 모시는 절이라서 검단정사로 명명되어 졌으며 수 천년 전부터 이곳에는 절이 있었으나 어느 시점에 소실되어 최근에야 재 창건을 서두르고 있는 절이라 소개했다.


 이곳 사찰에는 옛 사찰의 자료나 유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절터 규모나 절을 상징하는 주변 바위 등의 유적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어 옛 명성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검단산에 얽힌 검단선사를 모시는 절터로 호기심을 더하고 있으며 새로 창건중인 절터 중간지점에는 수령이 1000년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측백나무가 버팀목으로 자라고 있다.


 이 측백나무는 그동안 절터와 검단산을 지켜온 수림으로 영물이 아닐까 짐작이 간다. 실제로 사찰측에서는 “검단산을 지켜온 지킴이”라 주장 신선미와 호기심을 더했다.


1000년 측백나무 ‘도지정 기념물 시급’


검단정사에 다다라서는 옛 바위들이 옛 산사를 지팅해온 유물로 보기에 하등의 이유가 없는듯 하다.


 특히 수령 10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측백나무는 사찰 정 중앙에 자리잡아 사찰의 버팀목으로 자리한다. 이 나무는 도지정 기념물로 정해 보호수로 보호받아야 함이 시급한 실정이다.


 왜냐하면 수령 1000년 이상의 측백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1000년 사찰의 역사와도 맞물려 있는 듯 해 역사적 고증이나 사료로 활용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편 얼마전(2007년 10월)에는 이곳 사찰에 티벳의 달라이 라마승이 비공식적으로 다녀갔다. 사찰관계자에 따르면 잠시 들러 사찰을 탐험하고 득담을 나눠 돌아갔다는 주장으로 신비함을 더했다. 현재 이곳 사찰은 정신적 기도를 원하는 사람들이나 수양인, 정치인, 연예인 등이 자주 찾아 잠시 쉬어간다고 전해 새롭게 태어날 신(新)사찰의 기대를 모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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