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과 교산동 대형건물지는 백제 왕궁지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주장 터무니 없어 백제시대 건물지 확실


 최근 남한산성 행궁지 8차 발굴조사 결과 발굴단은 대형 건물지가 통일신라시대 건물지라고 발표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따라서 본보는 왜 이와 같은 주장이 잘 못되었는가를 밝히면서 하남의 이성산성과 남한산성 성곽의 발달과 유적 유물, 한반도에서 최대의 교산동 대형건물지 등이 축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왜 이러한 유적지와 유물들이 우리 지역에 집중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살펴보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겠기에 기획 연재하겠다. <편집자 주>


근초고왕(372년)때 교산동서 남한선성으로 옮겨

두 대형 건물지에서 백제시대 유물 등 대량 출토


 남한산성 행궁지 발굴조사 결과 건물 규모, 천주(天主)가 새겨진 기와등 백제시대 유물이 대량 출토됨에 따라 남한산성이 하남시 교산동과 더불어 백제의 왕궁지 였음을 뒷받침하고 있는 증거가 확보됐다.


 이는 광주시가 남한산성 행궁의 범위와 세부구조를 확인하여 복원함으로써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고 이를 역사체험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 의뢰한 행궁지 발굴조사 결과 드러났다.


 지금까지 발굴조사 결과 발굴단은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의 인화문 토기와 각종 기와류가 출토돼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문무왕 12년에 쌓은 주장성”일 것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따라서 이번에 발굴한 대형 건물지도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크게 잘못된 주장이다.


 하남시 교산동을 중심으로 백제의 500년 초기 도읍지가 발견되고 여기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남한산성에서도 발견됨으로서 백제시대 축성한 성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음을 입증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백제시대 쌓은 하남시 이성산성 화강암 초축 성벽이 남한산성 초축 성벽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하남시 교산동 백제 왕도와 남한산성으로 연결된 군사 통로 시설이 발견되어 도성과 산성으로 한 조를 이룬 성으로서 다른 여러 고대 도읍지와 같은 구조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셋째, 주변에서 생산되지 않은 남한산성 화강암 성돌을 운반하였던 백제시대 운하 유적이 하남의 덕풍천에서 발견되어 남한산성을 처음 쌓은 것은 백제라는 것이다.


 넷째, 남한산성 내부에서 토성의 발견과 백제시대의 유물 채집 또한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동일한 백제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다섯째,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차원이나 그 당시 실정에 밝은 실학자들이 백제시대에 처음으로 축성한 것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지적하였으며, 국가차원에서 ‘숭렬전’이라는 ‘온조왕 사당’을 건립할 정도로 백제 유적이라는 것이 확고했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 이외에 한종섭씨(백제문화연구회 회장)는 “남한산성이 백제시대의 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인 약정사(藥井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편을 남한산성 북쪽 산기슭에서 채집하였다” 며 “약정사는 고려시대의 사찰지로서 동국여지승람에 ‘약정사는 한산(漢山)에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약정사가 있었던 곳이 한산이라는 것이며 지금의 남한산이 고려시대 한산이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고려시대 편찬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3년(기원전 6년)에 한산(漢山)아래 도읍을 정하였다는 백제 건국지가 밝혀져 있다” 며 “근초고왕 26년(371)에는 백제가 3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죽이고 돌아와서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고 밝히고 “또 이번 남한산성 대형건물지 발굴 조사결과 천주(天主)라는 명문기와 가 발견됨에 따라 이는 근초고왕이 도읍을 한산으로 옮긴 것이 명확해 백제시대 건물지임이 명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의 두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백제 온조왕이 한강 이남으로 천도하여 도읍지를 정한곳이 지금의 남한산 아래 하남시 교산동이며, 이곳에 있을 때 근초고왕 때 고구려의 평양성까지 공격하여 고구려왕을 죽이고 이듬해인 372년 도읍지를 지금의 남한산성으로 옮겼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한산의 위치를 알 수 없었던 관계로 한산아래 백제 건국지와 근초고왕때 도읍지를 옮긴 한산에 대해서 알 수 없었으나 남한산성의 대형 건물지와 유물들, 그리고 위의 약정사 명문기와에서 한산의 위치가 지금의 남한산 일대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남한산성 아래 또는 성내부가 백제의 왕도로 사용된 위치라는 것이 물증과 기록에서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백제의 도읍지를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으로 주장해온 기존의 학설을 어떻게 바로잡느냐 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으로 떠올라 앞으로 사학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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