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하남시협의회 자문위원-정 민채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역까지 세계 최장거리 철도로 길이는 9334km이다. 러시아 짜르 알렉산드리아 3세의 칙령에 따라 1891년 건설이 시작되어 1916년 완공되어 개통되었다.

  민주평통 하남시협의회 자문위원 일행은 우수리스크 연수를 마치고 하바로프스크까지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 거리가 662km, 우리가 탄 열차의 소요시간은 약 9시간 50분이다. 이 거리는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일부이니 이 나라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사실 시베리아 횡단철도 탑승 이야기를 전부터 많이 들어온 터라 꼭 한번 타보고 싶었다.

우리는 탑승할 때부터 허둥댔다. 남의 나라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시스템에 좀 실망스러웠다. 숨을 헐떡이며 찾은 객실에는 이미 러시아 부부가 1층 침대칸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씩 웃고 눈인사를 했다. 말이 통하든 말든 나는 “I’m from Korea. South Korea.” 라고 했더니 ‘코리아’란 말에 알아듣는 것 같았다.

한국은 올림픽‧세계월드컵 축구대회 등 다양한 국제행사를 많이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도 좋고, 경제력과 군사력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니 이젠 옛날 약소국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외국에 나가면 본국의 국력에 의해 대접이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열차 룸메이트 황인수박사와 나는 각각 트렁크 두 개를 갖고 서 있으니 러시아 남자가 2층 침대를 가리키며 올라가라고 손짓한다. 그래도 멈칫거리니 그의 부인이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펴주었다. 사다리는 올라가거나 내려오기가 불편했고, 2층 침대도 불편하고 좁았다. 러시아 남자는 착하게는 보였으나 웃통을 벗어젖히고 신문을 본다. 가슴에는 털로 가득했다. 이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남자들도 웃통을 벗고 복도를 다닌다.

연해주는 대륙성기후라 그런지 생각보다 덥고 후덥지근했다. 황 박사는 불편하고 좁은 공간에서도 책을 잘도 본다. 답답하여 나는 사다리를 어설프고 조심스럽게 내려와 기다란 복도를 지나 다른 열차 칸에도 가보았다. 칸을 옮길 때마다 위험스러웠다. 소변이나 대변은 운행 중일 때만 보아야 했다. 화장실은 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 열차의 시설은 낡고 투박하여 한국의 6〜70년대 기차 같았다. 그래도 러시아인들은 잘도 참고 있다. 인내가 몸에 밴 것 같다.

열차 식당은 음료수 정도를 파는 수준이며, 간단한 영어 한마디가 통하지 않아 빵도 제대로 못 판다. 대륙횡단철도에는 여러 등급의 열차가 있다. 우리는 구간이 짧아 서민용 열차를 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러시아 사회의 일부나마 민낯을 똑똑히 보았다. 이 나라는 오랜 사회주의국가 때문이었는지 공항의 직원들조차 러시아말로만 사용해 승객들에게 불편하다. 국제화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래도 부러운 것이 있었다. 10시간 가까이 달려도 내내 초원과 활엽수, 지천인 야생화, 간간히 섞인 늪지대, 산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다. 농사를 짓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19세기 초만 해도 사실상 무주공산(無主空山)이었다. 이 땅이 발해의 영역이었다니 가슴이 답답했다.

머릿속에는 조선시대 왕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27명의 왕들 중 용맹스럽고 기상(氣像)이 뛰어나 조선의 국토를 한반도 이상으로 확장한 임금은 거의 없다. 그들은 성리학을 존중하여 학문과 예절에는 열심이었으나 국세(國勢)를 확장시켜 옛 영토를 되찾을 용기는 없었다. 중국의 종속국가로 사는 것을 숙명처럼 여겼으며, 한양 밖 100리 이상을 나가본 적이 별로 없으니 세상이 넓은 줄도 몰랐다.

이제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두 동강이 난 이 작은 한반도를 어떻게든 합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밤 12시가 다되어 기차는 마침내 하바롭프스크역에 도착했다. 모두가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밤 기온도 쌀쌀했다. 한국 같으면 현지 가이드가 팻말을 들고 기다렸어야 했지만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현지 운전기사는 “피곤하다며 트렁크를 각자 짐 싣는 칸에 넣으라.”고 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이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러시아보다 더 많은 강점과 매력을 지닌 미래 지향형 국가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한국은 대내외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이만큼 성장한 나라이다. 요즈음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깎아내리고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는 아닌지? 우리는 지금껏 이러한 어려움을 수도 없이 겪어왔다. ‛대한민국은 우리내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장점을 보유한 나라임을 재인식’해도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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